'라인브레이커' 김승대의 포항스틸러스 복귀는 전반기 이적시장 마감 직전 최고의 뉴스 중 하나였다.
2019년 여름 포항에 큰 이적료를 안기로 전북으로 향했던 그는 2년 반만에 다시 고향팀으로 돌아왔다.
최근 2년 동안 오범석, 신진호, 신광훈, 완델손 같은 과거의 영광을 이끈 소위
'연어의 귀환'을 반갑게 맞이했던 포항 팬들은 이번에도 쌍수 들고 환영했다.
복귀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김승대의 전 소속팀 전북현대는 이적시장 막바지에 영입한 김진규,
김문환, 윤영선으로 인한 선수단 연봉 상승의 반작용 효과로 김승대, 한승규의 이적을 추진했다.
김승대는 오직 포항만을 바라봤고, 포항도 김승대 복귀를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변수는 연봉이었다.
전북의 김승대는 포항이 다시 품기엔 연봉이 가파르게 오른 상태였다. 당초 추진했던 임대로도 포항이
버거운 현실이었다. 그때 김승대 스스로 연봉의 상당 부분을 과감하게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무산되는 듯했던 협상은 오히려 완전이적으로 결론 났다.
보장된 것을 내려 놓고, 포항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김승대. 그 배경에는 지난 2년 간의 정체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전북 입성 후 초반에는 자신의 가치를 보여줬지만, 이후 힘든 시간을 맞았다.
강원에서의 임대 생활 이후 전북으로 복귀해서도 모두가 알고 있던 라인브레이커의 화려한 플레이는
보기 어려웠다. 김기동 감독은 "더 이상 지체되면 축구 선수 김승대가 진짜 회복하기 힘든 슬럼프를
맞을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구단에 승대 복귀를 강력히 요청했다. 구단이 어려울 때 승대는
포항에 남고 싶으면서도 팀을 위해 이적료를 남기고 떠났다. 그런 선수를 힘들 때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복귀를 추진한 이유를 소개했다.
다시 포항은 검붉은 가로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김승대는 밝은 목소리였다. 포항이라는 도시, 포항이라는
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서른살이 훌쩍 넘어 두번째 포항 복귀를 한 그를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 포항 훈련에 본격 합류한지 3일째다. 익숙한 팀인데도, 2년 반 만에 와 보니 적응 안되던 게 있었나?
송라 클럽하우스로 돌아온 날 들썩거리는 분위기일줄 알았는데 와 보니 조용했다. 지난주 금요일 주축
선수들은 훈련하고 귀가했고, 다음날엔 동해안 더비를 위해 일찍 이동했다.
다른 선수들은 R리그 경기하느라 나갔더라. 주말 경기 후 이틀간 휴가여서 오늘 처음으로 선수단
전체와 만나 인사했다. 클럽하우스도 리모델링을 해서 이곳 저곳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느낌은 똑같다. 포항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곳이다. 그냥 좋다.
- 마치 김승대가 복귀할 거라고 예견이라도 했던 것처럼 등번호 12번이 비어 있었다.
그건 진짜 몰랐다. 포항으로 돌아가는 게 알려지고, 주변에서 누가 포항은 12번이 비어 있다고 얘기하더라.
확인하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정말 주인이 없는 번호였다. 처음엔 이거 왜 비어 있지 싶었다.
선호하지 않는 번호라 그런가, 아니면 이전 주인들(※ 김승대가 포항을 떠난 뒤 송민규가 12번을 달았다)
때문에 부담이 된 건가 혼자 추측했다. 어쨌든 포항에서 다시 12번을 달고 싶었으니까, 마음 편하게 그 번호를 택했다.
- 누가 가장 격렬히 환영해줬나
아무래도 (신)진호 형이랑 (신)광훈이 형이다. 광훈이 형은 강원에서 잠시 만났었고. 진호 형은 영원한 내 선배니까.
영남대 시절부터 진호 형 방졸이었다. 구단 직원 분들과 감독님, 코치님 다 좋아해주셨다.
- 신진호는 "승대가 돌아왔으니 쌍사의 상권이 살아날 거다"라며 신난 모습이었다.
아, 그 쌍사(※ 포항 시내 번화가인 쌍용사거리의 줄임말. 김승대의 정신적 고향이다) 얘기 진짜…
(웃음) 돌아오자마자 구단에서도 그 얘기부터 하더라. 프로필 촬영도 처음엔 쌍사에 가서 하자길래
계약서에 싸인하지 말까 잠시 망설였다. 소싯적의 좋은 추억이었지, 그게 현재의 내 이미지는 아니다.
전북에서는 완전 집돌이였다! 앞으로는 쌍사에서 보기 쉽지 않을 거다.
- 2019년 여름에 포항을 떠날 때 아쉬움이 있다는 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여운을 남긴 게 이렇게 복귀로 이어졌다.
항상 마무리는 포항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기회가 열리면 포항에서 다시 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당시에는 새롭게 간 전북에서 잘 하는 게 우선이었다. 어디를 가든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나중에 환영받고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전북에서 좋은 모습을 못 보여드린 건 아쉽지만
그래도 포항 팬들은 돌아온 걸 환영해줬다. 여기서 무조건 살아나야 한다.
- 김기동 감독은 다른 선수도 아닌 김승대니까 이 타이밍에 꼭 손을 내밀어주고 싶었다고 하더라.
너무 감사하다. 포항에서 함께 할 때부터 늘 각별한 사이였다. 내가 떠난 뒤에도 감독님이 포항이라는 팀을 더 좋게,
강하게 만드시는 걸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담도 된다. 감독님이 그만큼 저를 신경 쓰고
좋게 봐주시니까 그만큼 보답해야 한다. 이번 믿음에는 반드시 화답하겠다.
- 많은 것을 내려 놓고 포항에 왔다고 들었다. 이적을 결심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갑작스럽게 얘기가 나와 진행됐다. 원래는 전북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즌을 준비했다.
전북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최근에는 분위기가 좋지 못한 상황이라서 기회가 되면 뭔가 보여드리기
위해 다른 선수들과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 타이밍에 포항으로부터 제의가 왔다. 정말 많이 고민했다.
아내하고도 상의를 많이 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주변의 조언이 아닌 내가 전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나이가 있다고 하지만 포기할 시기는 아니다. 선수로서 다 보여주지 못한 것을 심적으로 편한 곳에 가서 좋은
상황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지금은 잠시 내려 놓더라도 좋은 모습을 보이면 상황은 언제든 회복될 수 있다.
축구 선수로서 나 자신이 살아나는 걸 첫번째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여러가지를 포기하고 이적할 용기가 생겼다.
- 2020년 말 결혼(※ 동료이자 후배인 손준호의 여동생 손주리씨와 포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도 했다.
삶의 큰 방향을 바꾸는 선택을 할 때 혼자만 결정할 순 없을 것이다.
아내에게 고맙다. 지금 시점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무조건 믿고 같이 갈 테니까 그렇게 하라고 했다.
아내가 임신을 한 상태라 다음달 중순에 출산을 해야 한다. 이미 전주 쪽에서 출산할 거란 계획 하에 병원이나
산후조리원 예약을 다 한 상태였다. 축구만큼 가족도 중요하니까 아내의 의사를 마지막까지 물었다.
그런데 무조건 내 일부터라고 하더라. 그렇게 되니까 결론을 내리기 편해졌다.
본인도 힘든 시기인데, 끝까지 나를 배려해줘서고마울 뿐이다.
- 전북에 남겨놓고 온 아쉬움의 크기도 작진 않을 것이다.
전북 팬들에게 죄송스럽다. 더 빛나야 하는 팀이고, 그 시기에 속해 있었는데 내게 기대를 거신
부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와서 아쉽다. 김상식 감독님께 특히 죄송하다. 많이 믿어주셨고,
잘 되는 방향으로 끌어 주시려고 애쓰셨는데 내가 보여드린 게 없다.
전북을 떠나는 게 확정되고나서 감독님이 "그 동안 마음고생 하느라 힘들었지?
포항에서 잘 하길 바란다"고 말씀해 주셨다. 마지막까지 신경 써 주셔서 죄송한 마음이 더 큰 상태로 나오게 됐다.
전북으로의 이적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여러모로 선수인 내가 더 잘 스며들고, 잘했다면 더 좋은 위치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준비된 곳이었는데 그게 안 된 거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녹색 유니폼을 입은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제는 전북을 떠났지만 좋은 모습으로 되살아나
다시 만났을 때 팬들과 서로 박수 보내는 모습을 상상한다.
- 포항 구단이 공개한 복귀 인터뷰에서, 예전 같은 모습이 쉽게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도 했다. 현재의 자신에 대한 객관화였을까?
분명한 현실이다.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지가 꽤 됐다. 포항 팬들의 기억은 과거 잘했던
포항의 김승대에 머물러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2년 간의 아쉬운 퍼포먼스에 대해서는 빨리
인정하고 주어진 숙제를 잘 풀어야 한다. 그게 잘 되면 포항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다. 당장 내가 기대치를 채워드리진 못해도 조금만 인내하고 지켜보고
응원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예전 모습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고, 포항에 왔으니 더 절실하게 임하겠다.
결국 그런 모습이 다시 나왔을 때 기다려준 포항 팬들에게 더 감사할 것 같다.
포항 팬들도 그런 모습을 보길 원하실 거다.
- 김기동 감독은 2선 중앙에 김승대를 세우겠다고 했다.
포항을 떠난 뒤에는 그 자리를 많이 보지 않았지만, 진짜 김승대를 찾게 해 줄 최적의 포지션이다.
감독님이 잘 이해해주시는 데 감사하다. 나는 중앙을 중심으로 좌우를 크게 오가고, 많이 뛰면서
상대를 혼란에 빠트리는 걸 좋아한다. 그런 장면에서 결정적인 찬스도 나온다. 측면에 배치되면
공을 소유한 상태로 드리블을 통해 좋은 영향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다. 중앙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포지션이다. 자신감이 있으니까 거기에 배치되면 장점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담이나 걱정을 덜 수 있게 됐다. 감독님이 도와주시는 만큼 팀에 빨리 도움이 되겠다.
- 지난 주말 동해안 더비에서 포항이 패배를 당했다. 중계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동해안 더비는 내가 포항에서 뛸 때도 많은 관심을 받는 라이벌전이었다. 라이벌전의 의미는 분명하다.
팬들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얘기하시고, 선수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전북도 울산과의 경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챔피언이 되기 위해 꺾어야 하는 상대라는 인식이 크다. 포항에서 울산을
상대한다는 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위치에서 만나도 질 수 없는 자존심 그 자체다. 무엇보다 경기
후 울산 팬들의 응원가를 패배를 앞둔 입장에서 듣고 싶지 않다. 포항 입장에서라면 그 노래를 반대로
돌려줘야 한다. 다음 동해안 더비 때는 반드시 우리가 이길 거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준비할 것이다.
전북 입장에서도 울산을 잡아 주길 기대할 테니 여러 면에서 나를 응원해주신 분들이 좋아할 만한 상황을 만들고 싶다.
이번 경기에서 차이는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올 시즌 남은 동해안더비에서는 그 차이를 좁힐 수 있을 거다.
- 과거 연변에서 포항으로 복귀했을 때는 여전히 20대였다.
두번째 복귀를 한 30대의 김승대는 스틸야드에서 어떤 존재가 될까?
축구 스타일은 변함없을 거다. 팬 분들도 나와 같이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서로가 잘 배려해줄 거다. 많은 기대도 감사하지만, 지금은 배려를 해주시면 더 좋겠다.
20대의 김승대는 패기 있고 도전적인 선수였다면, 이제는 모범적인 선수가 1번이다. 진호 형,
광훈이 형과 계속 대화하면서 후배들을 이끄는 역할도 보여주겠다. 얼마의 시간을 뛰든,
그 시간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겠다. 무엇보다 포항다운,
재미있고 색깔 있는 축구를 다시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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