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6화. 나희도(김태리)와 백이진(남주혁)이 반년 만에 재회한다.
둘은 시위대 속에 파묻힌 상태였다. 시위 구호 속에서 나희도의 작은 부름이 백이진에게 닿는다.
둘은 서로를 발견한다. 서로 응시한다.
군중은 주변시야 속으로 사라진다. 둘만 남는다. 그렇게 다시 만난다.
2년 전, 코로나19가 세상을 때렸다. 달력에서 A매치가 지워졌다. 돌아왔지만 관중이 없었다.
그다음에는 관중 수 제한이 뒤따랐다. 선수단 이동 경로가 제한되는 바람에 A매치는 서울까지 오지 못했다.
대한민국 축구 성지 서울월드컵경기장이 가득 찼던 기억은 가물가물해졌다.
TV 중계는 팬들의 직관 욕구를 온전히 채울 수 없었다. 볼수록 갈증이 심해졌을지도 모른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던 인내심이 2년을 경과했다. 군대 갔던 청년이 제대를 명받고도 남을 시간이다.
2년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가 알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A매치가 돌아왔다.
월드컵경기장역 에스컬레이터 앞에 길게 생긴 행렬이 반가웠다.
알록달록한 파라솔에서 퍼지는 닭꼬치구이 냄새도 2년 만이다.
북측광장 편의점은 들어갈 틈이 없다. 팬타지움 매대에서 대표팀 유니폼과 굿즈가 날개 돋친 듯이 팔린다.
기자실 도시락도 돌아왔다. 수용 인원 100%를 받는 A매치 현장에서 “이래야 축구지”라는 혼잣말이 절로 샌다.
우리는 축구를 좀 더 넓고 길게 봐야 한다. 축구는 경기만 뜻하는 용어가 아니다. 그라운드, 관중석,
경기장 매점, 주변 푸드트럭, 인근 상가가 전부 축구 경기장이다.
선수들이 뛰는 90분만 아니라 팬들이 경기장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직관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까지가 광의의 경기시간이다.
그래서 무관중 혹은 제한적 유관중은 축구를 온전하게 만들 수 없다. 3월 24일 대한민국과
이란의 맞대결은 누락이 거의 없는 축구였다. 이제 육성응원만 되찾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이란전을 앞두고 결과 예상 질문을 많이 받았다. 어떻게든 대답은 했지만, 솔직히 승패 결과에는 관심이 없었다.
양 팀 모두 카타르행 티켓을 거머쥔 상태였기 때문이다. 유일한 관전포인트는 축구의 귀환이었다.
벤투호의 승리, 손흥민의 골, 김민재의 태클도 좋지만, 나는 축구의 원래 모습을 다시 목격하고 싶었다.
팬들로 가득 찬 관중석, 붉은악마의 태극기, 플레이에 반응하는 소리, 국가대표 선수들과 팬들이
교감하는 현장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대한축구협회가 준비한 ‘보고 싶었습니다’라는 카드섹션 문구 그대로.
전반전 종료 직전, 손흥민의 오른발 슛이 이란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골키퍼의 방어를 정면으로 뚫었다.
이란은 아시아 최고 골키퍼 알리레자 베이란반드의 공백이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손흥민의 슛은
어떻게든 들어가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했다. 그 정도로 제대로 맞은 슛은 들어가야 한다.
후반 초반 한국의 공세 속에서 김영권이 추가골을 터트렸다. 4년 전 ‘카잔의 기적’을 만든 주인공 두
명이 나란히 상암벌을 뜨겁게 만들었다. 파도가 일었다. 스마트폰 플래시의 축복도 내리쬐었다.
이날 저녁은 지나칠 정도로 완벽했다. 2022카타르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A조에서 한국은 승점
23점으로 이란(22점)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지긋지긋했던 이란전 11년 연속 무승 기록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란전 2골 차 승리는 17년 만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부임 후 28번째 승리로 한국 대표팀 역대
최다승 감독이 되었다. 2018년 9월 코스타리카전(2-0승)부터 벤투호는 홈 20경기 연속 무패
고지를 밟았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개장 이후 10번째 만원 관중을 기록했다. 64,375명.
경기가 끝난 뒤, 팬들의 A매치 갈증이 얼마나 컸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일이면 또 학교나 일터,
각자의 터전에서 일상을 재개할 팬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돌면서 다시 찾아준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맨오브더매치’ 인터뷰로
늦어진 손흥민과 김영권이 올 때까지도 수만 관중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피사체를 아주 작게 만드는 거리감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6만 관중은
서로를 또렷이 발견했다. 둘이 재회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축구와 다시 만났다.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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