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크를 잘 던지는 제구 좋은 투수, 날카로운 변화구를 구사하는 투수,
그런 공을 좌우타자 안 가리고 어느 카운트에서든 잘 던지는 투수, 이를테면 닉 킹험 같은 투수.
한화 이글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말하는 '성공하는 외국인 투수'의 조건이다.
한화는 6월 1일 새 외국인 투수 예프리 라미레즈 영입 소식을 알렸다. 1993년생 우완 투수
라미레즈는 이적료 포함 계약금 10만 달러, 연봉 27만 5000달러 등 총 6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시즌 초반 외국인 투수 듀오의 동반 부상으로
선발진 운영에 어려움이 커지자 과감하게 교체를 결단했다.
올시즌 '이기는 야구'를 표방한 한화가 꼴찌 탈출 그 이상을 바라보려면, 새 외국인 투수 라미레즈가
1선발 역할을 해줘야 가능하다. 라미레즈는 KBO리그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그에 앞서, KBO리그에서 통하는 외국인 투수는 어떤 유형일까.
지난 2년간 한화를 이끌며 산전수전 다 겪은 수베로 감독도 이 문제에 대해선 똑 부러지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1일 대전에서 만난 수베로 감독은 관련 질문을 받고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나도 모르겠다"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어 수베로 감독은 "KBO리그는 무시 못할 만큼 터프한 곳"이라며 "2년간 있어봤지만 어떤 외국인
선수가 조금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할지 딱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다.
투수도 그렇지만 타자는 더 예측불허"라고 말했다.
수베로 감독은 "굳이 언급하자면, 닉 킹험처럼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투수"라며 자신이
생각하는 외국인 투수의 첫째 조건을 거론했다. 그는 "구위도 중요하지만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또 날카로운 변화구와, 그런 공을 좌우타자 가릴 것 없이 어떤 카운트에서든
던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투수라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런 조건을 갖춘 투수로 수베로 감독은 킹험 외에도
NC 드류 루친스키와 키움 에릭 요키시의 이름을 함께 나열했다.
루친스키와 요키시는 지난 2019년부터 올해까지
4년째 리그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한화가 새로 데려온 라미레즈도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능력은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과거 2017년 도미니카 윈터리그 감독으로 라미레즈와 함께한 적이 있다"는 수베로 감독은
"라미레즈는 스트라이크를 던질줄 아는 투수다. 또 마운드에서
보여줬던 담대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떠올렸다.
실제 마이너리그 유망주 시절부터 라미레즈는 적은 볼넷과 높은 스트라이크 비율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올시즌 트리플 A에서 9이닝당 2.43개의 적은 볼넷을 허용했고 통산 마이너 기록도 9이닝당
3.2개로 볼넷을 잘 내주지 않았다. 빅리그 레벨에서는 9이닝당
5.2개를 내줬지만 마이너 레벨에서 보여준 제구력은 수준급이었다.
구위도 나쁘지 않다. 라미레즈는 스리쿼터 투구폼으로 속구와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를 구사한다.
빠른볼 구속은 최고 154km/h에 달하고 평균구속도 140km/h 후반대를 유지한다.
라미레즈의 패스트볼은 2018년 기준 빅리그 상위 12%에 해당하는 높은 회전수를 자랑했다.
커리어 내내 주무기로 활용한 체인지업의 움직임도 평균 이상이란 평가다.
외국인 선수 성공에 차지하는 비중이 큰 리그 적응도 큰 어려움이 없을 전망이다.
한국 무대는 처음이지만 구면인 수베로 감독과 호세 로사도 코치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베로 감독은 "라미레즈는 로사도 코치와 각별한 관계다.
서로 매일 문자를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전했다.
다만 수베로 감독이나 로사도 코치가 직접 라미레즈 영입을 구단에 요청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수베로 감독은 "외국인 선수 명단을 받아보고서 알았다. 내 의견이나 로사도 코치의 의견이 반영된
것은 전혀 없다"면서 "라미레즈를 데려온다는 얘기를 듣고 솔직히 좀 놀랐다"고 밝혔다.
아이러니한 건, 수베로 감독이 '외국인 투수 성공사례'로 극찬한 킹험이 부상 문제로 한화에서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는 점이다. 오른 팔꿈치 통증으로 재활 중인 킹험은 이날 대전에서 불펜 피칭을 소화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수베로 감독은 말을 아꼈지만, 불펜 피칭 과정에서 통증이 재발한 것으로 보인다.
수베로 감독은 "오늘 킹험의 불펜 세션은 순조롭지 못했다. 그 이상은 공유하기 어렵다.
아직 선수 본인과 면담해보지 않았고, 어떤 점이 좋지 않았는지 정확하게 전해듣지 못했다.
흑백으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면서 "선수 본인도 실망감이 큰 것 같았다"고 전했다.
1군 복귀 일정을 가늠하려면 불펜 피칭부터 순조롭게 이뤄져야 하는데 킹험은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
벌써 시즌이 6월에 접어든 가운데 한화로서도 언제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외국인 투수 한 자리는 해결했지만, 다른 한 자리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는 한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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