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전주 KCC의 플레이오프 진출이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 19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KCC는 선두 서울 SK에게 66-87로 완패했다.
시즌 30패(18승) 고지에 오른 KCC는 플레이오프 마지노선(6위)인
6위 대구 한국가스공사(21승 25패)와의 간격이 4게임 차로 벌어졌다.
2경기를 덜 치른 가스공사와의 상대 전적이
1승 4패로 열세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격차는 그 이상이다.
남은 경기를 다 이겨도 24승에 불과한 KCC는
산술적인 PO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이미 자력 진출은 불가능해졌다.
상승세를 타도 모자랄 시점에 오히려 3연패를 당하며 역주행한 것은 치명타였다.
지난 대구 한국가스공사전에서는 3점슛만 무려 17개를 허용하는 등 116실점을 내주며 참패했고,
SK전까지 2경기 연속 20여점차 이상의 참패를 당했다.
더구나 상대였던 가스공사(이대헌-두경민)와 SK(김선형-자밀 워니) 모두 주력
선수들의 부상 공백으로 정상전력이 아니었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부끄러운 참패였다.
지난해 정규리그 우승팀인 KCC의 몰락은 올시즌 최대의 이변으로 꼽힌다.
KCC는 2020~2021 시즌 36승 18패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구단 역사상 5번째이자 2015-16시즌 이후 5년만이었다.
비록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안양 KGC인삼공사의 돌풍에 밀려 4전 전패에 그쳤지만 안정적인
신구조화를 바탕으로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전창진 농구가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KCC는 2021-22시즌에도 인삼공사-KT-SK 등과 함께 우승후보중 하나로 거론됐다.
라건아-송교창-이정현-유현준 등 전력 누수가 거의 없었고, 지도력이 뛰어난
전창진 감독의 지휘하에 다시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2021~2022 시즌은 초반부터 상황이 꼬였다.
지난 시즌 MVP인 송교창이 개막 후 6경기 만에 손가락 골절 부상을 당했고,
장기 결장 끝에 겨우 돌아온 시즌 중반에는 복귀한 지 얼마 되지않아 또 다시 허리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이밖에 김지완, 전준범, 박재현, 정창영 등이 번갈아가며 부상에 시달렸다.
지난 시즌 KCC의 또다른 히트작이던 유현준은 원인 모를 슬럼프에 빠졌고,
이정현은 꾸준히 경기에는 나섰지만 노쇠화 조짐을 드러내며 예전같은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2020-21시즌 KCC는 최다득점 2위(82.9점)-최소실점 1위(77.4점),
리바운드 공동 1위(40.7개)로 안정된 공수밸런스를 자랑했다.
하지만 1년만에 득점은 리그 5위(81.5점), 실점은 최다 2위(84.4점)로
공수마진이 마이너스가 됐고 리바운드는 35.9개(9위)로 리그 최하위권까지 추락했다.
그나마 평균적으로 중위권 정도는 가는 공격에 비하여,
수비 관련 지표들은 대부분 하위권에 가깝다.
새해 초에는 구단 최다연패 타이 기록인 10연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KCC는 허재 감독 시절이던 2006-2007시즌(2007년 1월 10일~2월 17일)과
2014-2015시즌(2015년 1월 30일~2월 22일)에 10연패를 기록한바 있으며 당시 KCC는
각각 10위(15승 39패)과 9위(12승 42패)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전창진 감독은 부산 KT 사령탑 시절인 2014년 10~11월
기록한 8연패를 뛰어넘는 감독 개인 최다연패 기록을 경신했다.
주전 의존도가 높은 편인 KCC는 선수층의 깊이가 다른 팀보다 떨어지는 편이다.
주전급 선수들이 지치거나 완전하지 않은 몸상태에도 계속 경기에
나서야하면서 결과가 좋지 못하니 경기력과 자신감이 덩달아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주전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갑자기 기회를 얻은 젊은
선수들은 투지를 보였지만 경험이 부족하여 활약이 들쭉날쭉했다.
결과적으로 KCC가 개막 이후 정상적인 베스트 라인업으로 치른 경기는 손에 꼽을 정도다.
3연패의 시작인 지난 14일 경기에서 PO경쟁팀 원주 DB에게 2점차로 석패한
것은 올시즌 KCC의 6강 희망을 사실상 좌절시키는 가장 뼈아픈 분수령이 됐다.
전 감독은 이날 간판 선수 라건아를 교체없이 40분 풀타임 출장시키는 무리수까지 강행했지만,
경기를 놓쳤고, 이후 경기에는 라건아의 하락세와 더불어 연패로 이어지는 후유증까지 겹쳤다.
결국 전 감독도 라건아를 무리하게 기용한데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필 팀으로서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는
와중에 정작 개인으로서는 역사적인 기록들이 속출했다는 사실은,
운명의 장난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
으악불괴' 이정현은 지난 2021년 12월 25일 인삼공사전에서
KBL 최초로 '500경기 연속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새웠다.
KBL 10년차인 귀화선수 라건아는 1월 19일 고양 오리온의 경기에서 방송인
서장훈(5.235개)을 넘어서 KBL 역대 통산 리바운드 1위 기록을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전창진 감독은 지난 2월 6일 삼성전에서 KBL 역사상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에 이어 두 번째이자 역대 최소 경기로 '감독 통산 500승'을 돌파했다.
모두 KBL 역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위대한 업적들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정작 축하받을 만한 기록을 세우고도 팀성적 부진으로 인하여 누구도 마음껏 기뻐하지는 못했다.
사실 KBL에서 정규리그 우승팀이 다음 시즌에 급추락한 사례는 의외로 드물지 않다.
2000-01시즌 우승팀 삼성이 2001-02시즌 8위로 추락한 것이 대표적이다.
2006-2007시즌 우승팀 모비스는 다음 시즌 9위,
2011~2012시즌 우승팀 동부(DB)가 다음 시즌 8위에 머물렀다.
KCC만 해도 불과 5년전인 2015-16시즌 우승을 차지했다가 다음 시즌 최하위까지
추락하는 초유의 진기록을 세운 경험이 있는만큼 지금이 그리 낯선 상황은 아니다.
이밖에도 2017~2018시즌 DB가 8위로, 2018~2019시즌 현대모비스가 8위,
2019~2020시즌 공동 1위였던 SK와 DB가 각각 8위와 9위로 나란히 추락하는 수모를 당한 바 있다.
이는 KCC만의 문제가 아니라 외국인 선수의 영향력이 크고,
선수층이 얇아서 군입대나 부상같은 돌발 변수에 취약한 KBL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호사다마(好事多魔)-새옹지마 (塞翁之馬)라는 말은
KCC의 롤러코스터같은 1년을 가장 잘 요약하는 단어들이 아닐까.
사실상 6강진출이 멀어진 KCC는 이제 유종의 미를 기약해야할 시점이다.
SK전에서 20점차 이상의 완패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KCC는 라건아(35분14초)를 비롯하여 송교창,
정창영 등 부진한 주전 선수들이 많은 시간을 소화해야했다.
물론 프로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이제는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대비한 변화를 모색해야할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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