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사이트 신고 토쟁이TV - 이현중의 3월의 광란 위대한 도전 개척자 옥은정 최진수가 먼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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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사이트 신고 토쟁이TV - 이현중의 3월의 광란 위대한 도전 개척자 옥은정 최진수가 먼저 있었다

토쟁이티비 0 466 2022.03.15 08:28

이현중(22, 데이비슨대3)이 드디어 ‘3월의 광란’에 진출한다.


이현중이 속한 데이비슨은 A-10 컨퍼런스 토너먼트 

준우승으로 NCAA 68강 토너먼트 자동출전권 획득에 실패했지만,

 NCAA 토너먼트 선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68강에 최종 선발됐다. 

서부지구 10번 시드를 받은 데이비슨은 오는 19일 오전 10시 40분 1라운드에서

 명장 탐 이조 감독이 이끄는 전통의 명문 미시건주립대와 격돌한다. 

데이비슨이 만약 2라운드에 진출한다면 ACC 정규시즌 

우승팀으로 은퇴를 앞둔 ‘코치K’의 듀크와 대결이 유력하다. 


한국인 최초로 NCAA 토너먼트에 진출했던 선수는 이현중이 아니다. 

지금의 이현중의 있기까지 개척자들의 땀과 노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인 최초로 NCAA 디비전1에서 활약한 선수는 옥은정(59) 씨다. 1981년 당시 이은정이라는 

이름으로 숭의여고를 졸업한 그는 당시로는 흔치 않았던 미국유학을 결심했다. 

1982년 미국 루이지애나 먼로 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한국최초의

NCAA 디비전1 선수가 돼 소속팀의 주전가드로 4년간 활약했다.


옥은정은 화려한 크로스오버 드리블과 노룩패스 

등 당시 남자선수에게도 보기 힘들었던 고급기술을 구사했다. 

그는 매직 존슨의 본명 어빙 존슨과 같은 E.J.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옥은정은 신입생이었던 

1982-83시즌 팀을 23승 6패로 이끌면서 한국선수 최초로 NCAA 토너먼트 무대를 밟았다.


당시 지역신문에 따르면 옥은정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매 경기 체육관에 

3천명 이상의 관중이 모였다. 여자농구 관중순위에서 전미 2위였다고 한다.


3학년이었던 1984-1985시즌은 그야말로 레전드였다. 옥은정은 시즌평균 

18.9점, 8.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워혹스를 30승 2패, 전미랭킹 2위로 이끌었다.


옥은정은 NCAA 토너먼트에서 팀을 파이널포(4강)로 이끌어 전설을 쓴다. 

그는 전미최고의 농구선수에게 주어지는 네이스미스 어워드의 최종후보까지 올랐다. 

1991년 옥은정은 루이지애나주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옥은정은 최근까지도 모교의 코치로 활동했다.


대학 4년간 옥은정은 경기당 18.9점, 8.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소속팀을 컨퍼런스 챔피언 3회에 올렸다. 

대학통산 기록은 102승 15패다. 루이지애나-먼로 대학의 유일한 파이널포 기록도 옥은정 시대에 달성했다.


이처럼 농구의 본고장 미국에서 엄청난 업적을 쌓은 

옥은정이지만 선수 및 지도자로서의 업적은 후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한국농구의 텃세로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된 적이 없고, 업적도 한국농구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 농구박물관이 생긴다면 반드시 재조명을 받아야 할 인물이다. 


한국인 최초의 NCAA 디비전1 진출 남자선수는 최진수다. 삼일중시절 일찌감치 국내에 적수가 

없었던 최진수는 미국유학을 선택했다. 그는 미국에서 농구명문인 몬트클레어와 사우스켄트에서 활약했다. 

당시 최진수의 고교시절 동료가 NBA에서 뛰는 아이재아 토마스였다.


최진수의 미국농구유학은 만화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미국고교무대서 뛰는 동양인 선수 최진수를 보고 충격을 받은 이노우에가 직접 일본농구선수

 미국유학 장학생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원했다. 이후 꾸준히 미국무대를 노크한 일본은 결국 

하치무라 루이(워싱턴), 와타나베 유타(토론토) 같은 NBA 선수를 2명이나 배출했다.


남자선수 최초의 NCAA 토너먼트 진출도 최진수다. 2008-09시즌 

ACC 소속이었던 매릴랜드는 21승 14패의 성적으로 NCAA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1라운드에서 캘리포니아를 84-71로 이긴 매릴랜드는 

2라운드서 2008년 준우승팀 멤피스에게 70-89로 패해 탈락했다.


최진수는 1라운드에 선수명단에 있었지만 출전하지 못했다. 

2라운드에서 패배가 확정되기 직전 개리 윌리엄스 감독의 배려로 최진수가 마지막 3분을 뛰었다. 

최진수는 3분간 뛰면서 파울 한 개만 기록했다. 

당시 1학년이었던 최진수가 큰 무대를 경험한 것만 해도 소득이었다.


2009-10시즌 최진수는 팀의 주전급 선수로 분류됐다. 하지만 2학년 시즌에 학사문제가 터졌고,

 고민 끝에 한국무대 유턴을 선택했다. 당시 매릴랜드에 현장취재를

 갔던 기자가 최진수의 유턴소식을 국내에 처음 전했다. 

한국최고 유망주가 큰 꿈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에 기자도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중

학생 시절부터 시작됐던 최진수의 미국무대 도전은 거기서 멈췄다.


동양인으로서 미국무대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농구만 잘해서는 결코 안된다. 

우선 언어의 장벽을 넘어야 하고, 문화의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가혹한 인종차별을 혼자서 감당해야 할 때도 많다. 공부도 제대로 잘해야 한다. 먼저 와서 손을 내미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농구를 배우고 가르치는 문화도 한국과는 너무나 다르다.


감수성이 여린 어린시절 모든 것을 경험해봤던 최진수이기에 후배 이현중을 바라보는 시선도 각별하다. 

최진수는 “나도 미국무대를 경험해봤지만 이현중이 너무 잘하고 있어서 뿌듯하다. 

앞으로도 다치지 말고 계속 좋은 모습 보여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이현중은 “최진수, 이대성 형들이 먼저 미국에 갔다 오고 저에게 바통터치를 한 것 같다.

형들의 응원이 정말 힘이 많이 됐다. 지금 미국대학무대에서 뛰는 선수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아쉽고 실망스럽다. 후배들 중에서 미국에서서 뛰는 선수가 좀 더 나왔으면 

좋겠다”며 후배들에게 ‘제2의 이현중’으로 과감하게 도전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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