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체육사학자로서 연구논문을 쓰기 위해 신동파, 김인건, 이인표, 유희형, 최종규, 김무현,
김동광 등 우리 농구의 레전드 들을 인터뷰한 경험이 있다. 이 가운데 신동파나 김동파는 운동을
하고 싶었지만 쉽게 운동부에 들어가지 못한 경험을 공유한다. 그들이 평생을 바친 농구는 사실
유일한 선택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야구를 좋아했지만 끝내 야구부에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운명의
부름에 이끌려,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어쩌다 보니 농구선수가 되었다.
그들이 농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그 결과 국제적인 스타로 성공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신동파는 회고록과 구술을 통하여 휘문중학교 1학년 때 우연한 계기로 농구부에 입회하게 되었으며,
원래는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였다. 군수를 지낸 조부와 공무원으로 일한 아버지 슬하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유복하게 자란 그는, 부모의 뜻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온화하고 원만한 성격이었다.
성격이 원만한 신동파지만 매우 고집스럽게 추구한 인생의 방향이 있었으니, 바로 운동 내지 스포츠에 대한
선망과 추구였다고 할 수 있다. 신동파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청계천 근처의 모래밭에서 마을 친구들과
야구 경기를 하며 놀기를 좋아했고 주로 포수를 맡았으며, 휘문중학교에 진학하자마자 곧바로 야구부에
가입한 데서 운동선수가 되겠다는 그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회고록에서
‘아시아의 철인’ 박현식(朴賢植)과 같은 대선수가 되기를 꿈꾸었다고 고백하였다.
‘1957년 3월 나는 휘문중학교에 들어갔다. 중학에 입학했을 당시 나의 꿈은 홈런왕 박현식(朴賢植)
씨와 같은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나는 동네에서 야구를 즐겨 했다.
나는 단짝친구들과 어울려 동네대항 야구시합을 곧잘 했다. 나의 포지션은 포수.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산림동 팀은 인현동 팀과 청계천변에서 경기를 하게 되었다. 이때는 청계천이 복개되지 않고 있어 가운데는
내가 흐르고 내의 양 가에는 모래사장이 있어 우리들의 좋은 놀이터가 될 수 있었다. 이날 경기에서 나는
상대편 투수가 던지는 공에 왼쪽 눈을 얻어맞아 눈이 퉁퉁 부어올랐으며 집에 돌아가서는 부모들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이후 나는 부모 몰래 야구를 즐기면서도 포수는 그만두고 외야수를 했다.’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신동파의 결심은 단단했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그의 꿈도 시련에 부딪혔다.
중학생이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야구부에 가입할 무렵 신동파의 체격은 키 1m65㎝로 비교적 큰 편이었지만
몸무게가 45㎏ 안팎이어서 마른 편이었으며, 휘문중학교의 야구부 감독(신동파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나 최영식을 비롯한 당시의 휘문중고등학교 동문들은 손희준이라고 기억하였다.)은 이러한 체격을 ‘약한
몸’으로 간주하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신동파에게 “너는 몸이 약해 야구선수가 될 수
없으니 야구를 그만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라며 탈퇴를 권한 것이다.
‘나는 이 순간 몸이 깡마른 나를 한없이 원망하였다. 이 당시 나의 키는 1m65㎝로 비교적 큰 편이었으나 체중은
45㎏ 정도여서 마른 편이었다. 너무 실망하는 나를 보고 감독은 당황하면서 “야구선수가 되려면 몸도 튼튼해야
되고 특히 체격이 좋아야 한다.”고 말하고 “몸이 튼튼해지면 다시 야구부에 들어오라.”면서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는 야구부에서 쫓겨난 것이 어린 마음에 분하고
서러워 집에 돌아와서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김동광은 1965년 인천 신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송도중학교에 진학한 다음 농구선수가 되었다.
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육상, 기계체조, 핸드볼, 야구 등 여러 가지 운동을 했다고 한다.
특히 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김동광은 인천 상의중학교에 진학하고자 했지만 낙방했고 2차 지명
학교였던 송도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는 중학교 진학 당시 농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께 진학한 친구 문영환과 함께 농구부의 훈련을 구경하다가 코치로 일하던
전규삼의 권유를 받아 선수가 되었다고 농구 입문 과정을 술회하였다.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농구를 처음 보았다. 그때만 해도 아웃코트에서 운동을 할 때다.
문영환이라고 지금은 미국에 있는 혼혈아 친구와 ‘야 이거 재미있다’ 이러면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전규삼 선생님이 다가와 “너희들 운동할래?”하고 물으셔서 “한 번 보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우리가 웬만한 애들보다는 키가 커서 전규삼 선생님 눈에 띄었을 것이다. 전 선생님은 우리를 보고
(혼혈아니까) 한국 아이들보다 키가 더 자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김동광 구술)
비 온 뒤 골목길에서 지나가는 여성의 궁둥이를 향해 진흙 묻은 공을 날리며 개구쟁이 짓을 하던 김영기도
단번에 농구선수가 되지는 못했다.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이 꽤 운동신경을 타고났다고
확신한 것 같다. 타고난 재능을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어린 김영기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어떤 운동이든
하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농구가 가장 매력 있는 운동이었다. 김영기는 경기 중에 음악만 틀어 놓으면
훌륭한 군무(群舞)가 될 것 같은 농구의 기계적이고 율동적인 움직임에 완전히 매료됐다. 당시 배재
농구가 전국 무대를 휩쓸고 있던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기왕이면 각광받는 종목의 선수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날, 김영기는 용기를 내서 농구부를 찾아갔다. 코트 안에서는 농구부원 열댓 명이 열심히 달리고
슛을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김영기에게도 낯이 익은 코치 선생이 네댓 명에게
기본 동작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때 김영기 쪽으로 공이 하나 굴러왔다. 그는 선망어린 손끝으로 공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공을 가지러 오는 선수에게 패스했다. 그 순간 김영기는 신명이 난 두 팔의 혈관
속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코트를 바라볼 때 코치
선생이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김영기는 떨리는 가슴을 달래며 입을 열었다.
“저… 선생님!”
선생은 아무 대답 없이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소년 김영기를 내려다보았다. 김영기는
얼굴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시선을 땅으로 향한 채 겨우 이렇게 말했다.
“저… 농구가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네가?”
어떻게 너 따위가 농구를 하겠느냐는 듯한 표정. 김영기는 용기를 짜냈다.
“예, 저도 하면 될 것 같아요! 선생님, 꼭 시켜 주세요.”
“농구 해 봤니?”
“못해봤습니다.”
“그럼 어떻게 농구를 하겠다는 거야?”
“그래도 하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 거야. 그리고 네 체격 가지고는 공이 너를 데리고
다니는 농구지, 네가 공을 가지고 움직이는 농구는 못하겠다!”
사실 이 무렵 김영기는 약골에 속했다. 키는 1m30㎝, 몸무게 45㎏이었으니 큰 키와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는 농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거기다 얼굴은 샌님처럼 하얗고 손은 정상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작았다.
그래도 코치 선생에게 거절을 당하니 몹시 섭섭했다. 그리고 분했다. 소년 신동파의
울음보를 터뜨린 그 분함과 서운함을 김영기도 앞서 체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
“…….”
코치 선생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알아듣게 이야기를 했는데 왜 귀찮게 구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전 선수가 안 돼도 좋아요. 그냥 농구부에 넣어만 주세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다!”
코치 선생은 내뱉듯이 쏘아붙이고 그냥 가버렸다. 김영기는 되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일단 후퇴.
코트를 떠나면서 몇 번이나 훈련하는 농구 선수들을 돌아보았다. 그 다음날 방과 후에도 김영기의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농구장으로 향했다. 그는 코트에서 좀 떨어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선수들의 훈련을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방과 후에는 어김없이 농구장 주변에서 어슬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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