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바라보기엔 벤투호가 흔들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벤투호는 단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파울로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직 최종예선 2경기가 남았지만 큰 목표는 다 이루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진출에 더해 10회 연속 본선행이라는 업적을 세웠다.
이 업적의 시작과 끝은 재밌게도 한 선수가 책임졌다. 바로 권창훈이다. 권창훈은 레바논과의
최종예선 2차전에서 결승골로 첫 승을 안 기고, 시리아와의 최종예선 8차전에서 추가골로 월드컵 진출
티켓에 도장을 찍었다. 권창훈은 최종예선에서 2골을 넣었는데, 그 골의 중요성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 '인터풋볼'은 권창훈과 전화로 만나 벤투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들어 벤투 감독을 향한
시선이 많이 긍정적으로 달라졌지만 시계를 6개월 전으로만 되돌려봐도 분위기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빌드업 플레이만 한다'부터 시작해 '이런 축구로는 월드컵에 나갈 수 없다'라는 극단적인 비판까지.
언제나 무난히 통과했던 월드컵 2차예선부터 부침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걱정들이 비현실적이지 않다고 치부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선수도 사람이기에 최선을 다하고도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흔들릴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때마다 벤투 감독을 감싼 건 선수들이었다. 감독과 선수의 상하 관계가 뚜렷한 한국
축구 문화가 그렇기에 혹은 단순히 맹목적으로 감독을 믿어보자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권창훈은 그 이유에 대해 차분히 말해줬다.
# 벤투호
Q. 국가대표팀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고 합니다. 벤투호가 승승장구하면서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성공했습니다.
이번에 대표팀이 보여준 모습이 굉장히 만족스러우실 것 같아요.
A. 대표팀이 전지훈련을 진행하면서 벤투 감독님께서 하고자 하는 축구를 더 확고하게 정립해주셨어요.
그래서 선수들도 자신의 역할이나 플레이에 대해서 더 인지를 잘했습니다. 저도 전지훈련을 통해서 많이 배웠고,
최종예선 2경기를 위한 좋은 시간이 됐어요. 그렇게 준비한 대로 경기 방향을 추구하면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네요.
Q.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당한 적이 있어서 누구보다도 카타르 월드컵이 간절할 것 같습니다.
권창훈 선수가 시리아전에서 추가골을 넣으면서 월드컵 진출에 도장을 찍은 셈이 됐는데, 그 순간 여러 감정이 교차했을 것 같습니다.
A. 월드컵 1차예선부터 최종예선까지 모든 선수들이 고생하고,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달렸잖아요.
좋은 순간에 대표팀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저한테는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골을 넣고 나서는
제가 군인 신분이라서 카메라를 향해서 경례를 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카메라 찾아서 경례해야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웃음).
Q. 앞으로 월드컵까지 9달 정도 남았습니다. 어떻게 준비하실 계획이신가요?
A. 몸관리를 잘하는 게 가장 우선일 것 같아요. 경기를 꾸준히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상을 항상 방지하는 걸
가장 신경써야 합니다. 몸관리도 다른 때보다 더 착실히 해야 할 것 같아요. 부대가 훈련 시설이나 환경적인
면에서 잘 갖춰져 있어서 잘 활용하면 저한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사실 최종예선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벤투 감독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밖에서 보기엔
선수들끼리는 굉장히 탄탄히 뭉쳤고, 벤투 감독의 축구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것 같아요.
A. 감독님과 코칭 스태프 그리고 선수단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감독님이 추구하는 축구를
선수들도 최대한 빨리 이해하고 흡수하려고 노력했고요. 그런 축구가 충분히 좋은 철학이라는 걸 선수들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독님을 믿고 따라갈 수 있었죠. 그 다음 각자 본인들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Q. 그렇지만 선수들도 월드컵 2차 예선과 최종예선 초반에 경기력이 좋지 않을 때 흔들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선수들끼리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나요?
A. 항상 그런 위기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때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인지를 선수들끼리도 이야기했습니다.
'잠깐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러면 안된다. 우리의 목표는 이게 아니다. 더 잘 준비하고, 준비한 대로 경기장에서
보여줄 수 있도록 스스로 더 준비하자'고 계속 이야기했어요. 감독님에 대한 신뢰나 믿음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많은 경기도 하지 않은 상태라 반전해 월드컵 진출에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크게 동요되지는 않았어요.
# 올림픽, 수원, 부상...그리고 새로운 시작
권창훈은 2022년 시작을 월드컵 진출이라는 큰 성과로 시작하기도 했지만 2021년에는 아쉬움도 많았다.
유럽 커리어를 정리하고, 친정팀인 수원 삼성으로 돌아왔지만 순탄한 시즌이 아니었다.
와일드카드로 나간 2번째 올림픽은 8강에서 좌절됐고, 수원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부상이 권창훈을 가로막았다.
그래도 권창훈은 쓰러지지 않았다. 이제 군에 입대해 김천 상무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 중이다.
Q.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거의 바로 올림픽에 나갔지만 많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권창훈 선수는 2번째 올림픽이라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텐데,
어떤 점이 제일 아쉬움으로 남는지 궁금하네요.
A. 지금 상황에서 특별하게 말씀을 드릴 수 있는 사안은 없는 것 같아요. 좋지 않은 상황이 됐고,
아쉬운 부분은 있겠지만 팀 전체가 부족했습니다. 선수들도 몇 년이랑 시간을 올림픽을 위해서 준비했고,
그 마음을 저도 알기 때문에 그 나이 때 선수들이 아쉬워하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2번의 기회를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Q. 올림픽을 마친 뒤에 수원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부상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수원의 성적이 좋지 못해서 선수 본인이 가장 답답했을 것 같아요.
A. 갑작스럽게 부상이 생겼어요. 가벼운 부상도 아니라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던 건 사실이에요.
팀에 더 도움이 되려고 왔는데,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 속상하고 아쉬웠습니다.
Q. 수원에서 같이 뛰던 정상빈 선수가 유럽에 진출했어요.
수원에서유럽으로 진출한 선배로서 정상빈 선수가 성공할 것 같은가요?
A. 상빈이가 능력을 인정받고 유럽에 진출했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상빈이는 잘할 거에요.
실력으로나, 인성으로나 어떤 것 하나 약점을 찾을 수 없는 선수거든요. 가서 동료들하고 빨리 친해지고,
경기장에서 상빈이가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잘 보여준다면 충분히 매 경기 성장하는 선수가 된다고 믿습니다.
Q. 이제 제대로 된 군생활이 시작됐을텐데, 군대 생활은 잘 적응 중이세요?
A. (김천이) 부산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어서 바로 부산으로 합류해 훈련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Q. 김천에는 권창훈 선수에게 축구로는 후배지만 군대로 치면 선임이 많은데요.
참으로 묘한 관계입니다. 그래도 선임들이 잘 챙겨주나요?
A. 모든 선임들이 잘 챙겨주세요. 하나하나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잘 알려주신다.
Q. 김태완 김천 감독과도 개인적인 대화를 나눠보셨나요?
A. 부산에 합류해서 훈련을 진행한 게 일주일 정도 됐어요. 감독님께서 개인적으로 어떤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어요.
곧 시즌이 시작하니까 동료들이랑 발을 맞추고, 어떤 플레이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감독님의 축구 안에서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Q. 이번 시즌부터는 김천 소속이라서 친정팀인 수원이랑 적으로서 만나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겁니다.
빅버드에 가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으세요?
A. 아무래도 수원에서 선수 생활을 해서 팬들이 많은 사랑을 주셨어요. 기분이 오묘할 것 같아요.
팬들이 있으시면 더 그럴 것 같고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뛸 생각입니다. 많은 응원해주시면 좋겠네요.
Q. 이번 시즌 김천에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A. 매 경기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충분히 좋은 능력을 가진
선수가 많아서 상위 스플릿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매 경기 최선을 다하면 좋은 위치에 있을 겁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축구 팬들도 권창훈 선수에게 가장 궁금해하는 사안인데요.
전역 후 다시 유럽에 도전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A. 아직은 먼 이야기라서...(웃음). 지금 답변을 드리기엔 애매하네요. 일단 군인 신분으로
김천에서 뛰는 중이라 맡은 임무를 다 수행하고,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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