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 이민재(35)가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프로에서 살아남은 원동력이었다.
특출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늘 악바리 근성을 품고 프로라는 냉정한 무대에서 생존을 이어왔다.
사회로 나가보니 더 냉엄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민재는 꿋꿋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소신껏 새로운 길을 택했고, 어엿한 ‘맛집 사장님’이 됐다.
※ 본 기사는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점프볼을 통해서는 오랜만에 근황을
전하게 된 것 같은데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남양주에서 분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전 농구선수 이민재입니다.
남양주에 들를 일 있으면 방문해주세요. 맛있는 떡볶이로 보답해드릴게요(웃음).
2010 드래프트 전체 16순위로 서울 SK에 지명됐습니다.
지명 당시 기분은 어땠나요?
얼떨떨했죠. 선수라면 누구나 프로를 꿈꾸는데
목표를 이루게 돼 기분 좋았어요. 그때 SK는 (주)희정이 형,
(방)성윤이 형, (김)민수 형 등 국가대표 라인업이었잖아요. 나중에 (김)효범이 형도 왔고요.
특히 희정이 형이 신인들을 잘 챙겨주셨어요. 사우나에서 조언도 많이 해주셨죠.
당시 신선우 감독이 연습에서 일정 기간 동안 정해놓은 슛 성공률을 유지한 2군 선수에게
1군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민재 선수도 미션을 클리어한 선수 가운데 1명이었고요.
구체적인 성공률은 기억 안 나지만, 덕분에 저와 (신)상호 형이 기회를 받았어요.
감독님이 2군 멤버들에게도 동기를 부여하신 거죠.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당시 감독님에게 반항한 형들도 있었거든요.
주전들에게 자극을 주는 차원도 있었던 거죠. 그래서 처음으로 엔트리에 들어갔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설레더라고요. 솔직히 데뷔경기(2010년 12월 8일 전자랜드전)에 대해선
(서)장훈이 형 수비한 것 외엔 아무 기억이 없어요. 공 한 번이라도 잡았나?(3점슛
1개 넣었다고 전하자)아, 제가 자신 있는 게 슛이잖아요(웃음).
인생경기는 2010년 12월 19일 삼성전이었습니다.
7분 28초만 뛰고도 3점슛 3개를 모두 넣으며 11점했어요.
형들이 장점은 슛이니까 자신 있게 던지라고 하셨어요. 희정이 형이 제 찬스를 많이 살려주셨죠.
주말경기여서 만원관중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아마와 프로의 차이를 느꼈어요. 슛 들어가면 관중들이
열광해주셨는데 심장이 두근두근하더라고요.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어요. 경기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흥분이 안 가라앉더라고요.
마침 지상파 중계까지 겹쳐 지인들에게 연락도 많이 왔어요.
사실상 그 경기 덕분에 10년간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날 기자님이 인터뷰해주셨잖아요.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벤치멤버들에겐 그런 경험이 정말 소중하거든요.
데뷔시즌 끝난 후 LG로 트레이드됐습니다. 트레이드 소식 들은 후 울었다는 제보를 받았는데?
그건 누가 놀리려고 과장해서 얘기한 것 같네요(웃음). 아쉽고 서운하긴 했죠.
문경은 감독님이 감독대행 되자마자 부르시더니 “LG에서 잘할 수 있겠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잠시 ‘버림받는 건가?’ 생각도 들었지만, LG에서 나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어요.
당시 LG 숙소가 방이동이어서 좋았어요. 집(천호동)이랑 멀지 않았거든요.
LG에서 2년 뛰었는데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어요. 시스템이 잘 갖춰졌고,
선수단 지원도 잘해준 팀으로 기억에 남아있어요.
2012-2013시즌 종료 후 처음 FA가 됐는데
사인앤트레이드를 통해 KT로 이적했습니다.
사실 군대에 갈 생각이었는데 전창진 감독님이 1년 더 뛰고 가길 바란다고 하시더라고요.
조동현 코치님이 은퇴하셔서 그 역할을 해줄 선수가 필요하다고 하셨죠. (전창진 감독은 어떤 감독으로
기억에 남아있나요?)공과 사 구분이 명확하셨어요. 훈련할 때는 정말 무서우셨죠. 공기 자체가 달라요(웃음).
하지만 쉴 때는 선수들을 전혀 터치하지 않으셨어요. 감성적인 부분도 남다르셨어요. 크리스마스에 원정경기를
치러야 해서 창원으로 이동했는데, 밤 12시에 선수단을 감독님 방으로 부르셨어요. 가보니 화장품세트와
손편지를 선물로 주시더라고요. ‘민재야. 고생이 많다’라고 시작하는 편지였는데 뭉클했죠.
그래서 혼난 적도 많았지만 인간적인 면이 더 기억에 남아요. 솔직히 누군가는 보여주기식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손편지는 지금도 가지고 있나요?)그럼요. 그걸 어떻게 버리겠어요.
번번이 상무에서 탈락해 2014년 일반병으로 군에 입대했습니다.
농구선수로서 감각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허)진석이 형(당시 LG 매니저), 송영진 코치님(당시 KT)이 부대로 공을 보내주신 덕분에 조금이나마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죠. 매일 연등시간에 사이버지식정보방 가서 농구영상을 찾아봤고, 새벽운동과
웨이트트레이닝도 꾸준히 했어요. 경기감각은 유지할 수 없었지만,
근력은 오히려 입대 전보다 좋아질 수 있었죠.
군 제대를 앞둔 시점에 입단 테스트를 받아 KT와 다시 계약했습니다. 당시 조동현 KT 감독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현역시절에 저를 거칠게 수비했던 선수예요. “수비가 너무 심한 거 아니냐?”라고 하니까 “형님, 죄송해요.
저 이렇게 안 하면 경기 못 뛰어요”라고 하더라고요. KT에는 그런 투지를 갖고 있는
선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구단에 요청해 계약했죠)
저도 그 얘기 기억나요. 엄청 짜증 내셨거든요(웃음). 그땐 안 듣는 척하셨는데 제 얘기가 인상 깊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저에겐 1분, 1초가 절실했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벤치멤버들이 그런 마음으로 경기를 뛸 거예요.
그렇게 수비해야 팀에서 조금이라도 알아주거든요.
2016-2017시즌 종료 후에는 현대모비스, KGC 등 2개팀으로부터 영입의향서를 받았잖아요. 기분이 어땠나요?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어요. (이)정현이가 많은 관심을 받으며 KCC와 거액에
계약한 것에 비하면 초라한 연봉이잖아요. 하지만 KBL에서 FA 담당하시는 분이 “1년만 뛰고 은퇴하는
선수들도 많은데 이민재 선수는 행복한 겁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얘기 들으니까 생각이 조금 달라지긴 했죠.
KGC를 택했던 배경은?
300만 원을 더 높게 불러주셨는데 돈 때문에 택한 건 아니었어요. 계약 전 양 팀 사무국장님들과
10분씩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김성기 KGC 국장님의 얘기가 더 끌리더라고요.
“LG 시절부터 너를 지켜봐왔다”라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제 플레이 스타일, 향후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말씀해주셨죠. “네가 이렇게 시즌을 준비하면 2, 3번 역할을 할 수 있고,
(양)희종이의 백업을 맡는 것도 가능하다”라고 하셔서 신뢰가 갔죠.
주위에서 현대모비스 가지 않을 걸 의아하게 여겼지만 전 KGC를 선택하는 게 맞았다고 봐요.
김승기 감독님이 KT 시절 코치로 모신 은사님이기도 했고요.
KGC와 계약한 직후 동호회농구를 하다가 팔을 다쳐서 수술했습니다.
이 탓에 2017-2018시즌은 3경기밖에 뛰지 못했고요.
우승멤버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의욕적으로 시즌을 준비했었어요. 우승멤버가 아닌데도 팀에서
우승여행을 보내주려고 하셔서 감사한 부분도 있었죠. 그런데 의욕이 과해 운동하다 다쳤고,
수술하느라 여행도 못 갔어요.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어쨌든 관리를 못한 거잖아요.
사실 그대로 은퇴해도 무방했어요. 염치가 있었다면 저 스스로 나갔겠죠. 그런데 김성기 국장님이
“쓰려고 데려왔던 거니까 기회를 주겠다. 준비해서 보여줘”라고 하시면서 2018-2019시즌에도
선수등록을 해주셨어요. 그 한마디 덕분에 독기를 품고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시즌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2018-2019시즌을 나름대로 잘 치를 수 있었죠.
2018-2019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었는데 KGC의 제안을 거절하고 FA 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선협상 때 제시받았던 금액보다 적은 금액에 1년 계약하게 됐는데?
돈보다는 선수생활을 2년 더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팀에서는 1년밖에 안 된다고 하셨죠.
우선협상에서 계약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어요. 결국 더 적은 금액에
계약했지만 후회는 안 해요. 오히려 저 나름대로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열심히, 성실히 농구를 해왔다고 자부하거든요. 한 분야에서 10년 동안 일하면 전문가라고 하잖아요.
대단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프로에서 10년 동안 뛰었으면 그만큼 성실함을 인정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 여파로 조기종료된 2019-2020시즌이 선수로서 마지막 시즌이었습니다.
마지막 시즌이 될 거란 예상은 했겠지만,
준비없이 마지막 경기를 치른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건 아쉽죠. 시즌 중반 정도 되면 팀 내 분위기를 통해 내가 다음 시즌 전력인지,
전력 외인지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시즌 중반부터 ‘은퇴하면 뭘 해야 하나’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막막하더라고요. 무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수들이 은퇴 직전에 하는 고민일 것 같아요.
희정이 형 정도 되는 스타도 “은퇴하면 뭐 먹고 살아야 되냐?”라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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