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을 투수로 살다가 다시 타자하는 건데, 남들보다 더 많이 해야죠."
SSG 랜더스 제주 서귀포 스프링캠프에서 외야수 하재훈의 하루는 아침 7시부터 시작된다.
아침식사 후 숙소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야구장으로 이동, 얼리워크조에서 외야 수비 훈련부터 한다.
이후 정규훈련시간에는 외야에서 펑고를 받다가, 같은 외야수인 한유섬-김강민-오태곤과 한 조를 이뤄
타격 훈련을 진행한다. 유심히 지켜본 하재훈은 다른 조원들보다 훨씬 긴 시간 배팅케이지 안에 머물렀다.
다른 선수보다 거의 두 배는 많은 공을 치는 것처럼 보였다. 점심식사 후에도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엑스트라 워크가 이어졌다. 오전에 친 만큼을 오후에도 치고 또 치고 또 쳤다.
최정과 이재원이 신인이었던 시절 SK 훈련이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했다.
오후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얘기할 틈이 생겼다.
'온종일 너무 바쁜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하재훈은 "바쁘죠. 타자는 원래 캠프 때 할 일이 많다"면서 이렇게 답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해서 바쁩니다. 얼리워크도 하고 타격훈련도 하고 이것저것 골고루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집중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하고 있어요. 캠프에 오기 전부터 많이
할 각오로 왔으니까, 남들보다 더 많이 해야죠."
하재훈은 숙소에 들어가서 바로 야수조 미팅을 한다고 했다. 잠시 쉬었다가 저녁 식사 후에는 다시 훈련이다.
SSG는 캠프 숙소인 월드컵리조트 외부에 간이 타격연습장을 마련했다. "밥 먹고 또 휘두르러 가야죠."
하재훈이 특유의 강한 동남 방언 엑센트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한동안 멀어졌던 공과 다시 가까워지는 중…조금씩 밸런스가 잡힌다"
2019년 SSG(당시 SK) 입단 당시 하재훈은 투수였다. 다른 9개 팀은 하나같이 하재훈을 외야수로 평가했고,
만약 외야수로 안되면 투수로 전향시킬 계획을 세웠지만 SSG는 반대로 생각했다. 투수로 데뷔한 하재훈은 데뷔
첫해 바로 세이브왕을 차지하며 화려한 시간을 보냈다. 이대은, 이학주 등 함께 데뷔한 국외
유턴파 동기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투수 전향 첫해부터 무리한 여파가 돌아왔다. 이듬해 구속 저하와 피안타 증가로 고전하다 어깨 부상으로
일찍 시즌을 접었다. 한번 떨어진 구속은 해가 바뀌어도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고 어깨 통증도 계속됐다.
결국 2021시즌 뒤 하재훈은 구단과 상의 끝에 외야수 전향을 결정했다.
겨울에는 KIA 최형우의 도움으로 황대인과 함께 전주에서 특별 훈련을 소화했다.
엄밀히 따지면 포지션 '전향'이라기보다는 원래 포지션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재훈은 미국 마이너리그
커리어 내내 외야수였다. 마산용마고 시절에는 포수가 주포지션이었지만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뒤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8년을 외야수로 뛰었고 총 585경기
4906.1이닝을 외야에서 보냈다. 외야수는 하재훈에게 익숙한 원래 자리다.
하재훈은 "투수 시절과 비교하면 훈련량이 어마어마하게 차이난다"고 했다. 그는 "투수로 캠프에 참가했을 때는
스케쥴이 일찍 끝났다. 끝나면 알아서 보강 운동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투수들도 야수가 훨씬 힘들다는 걸 다들 안다"고 말했다.
마이너리그 유망주 시절 플러스 등급의 스피드와 어깨, 파워를 갖춘 외야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하재훈이다.
2012년에는 메이저리그 퓨처스 게임 대표로 출전할 만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잠시나마 컵스 유망주 랭킹 18위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현재까지 SSG 내부 평가도 다르지 않다. SSG 관계자는 "운동 능력이 정말 좋은 선수다.
파워도 좋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스피드가 빠르다. 외야 수비도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외야수비를 지도하는 조동화 코치도 하재훈을 향해 '조금씩 옛날 감이 돌아오는 것 같다'며 자신감을 북돋웠다.
이에 대해 하재훈은 "외야 수비는 주로 좌익수 훈련을 하고 있다"면서 "스타트 타이밍과 방향 전환이 중요하다.
외야 수비가 자신 있으면 아무리 첫발 스타트가 좋지 않아도 따라가면서 낙구지점을 찾을 수 있다. 또 실수로 왼쪽으로
스타트했다가도 다시 오른쪽으로 자리잡는 게 된다. 그런 것들이 다시 저절로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루 플레이에선 순간적인 방향 전환에 중점을 두고 훈련한다. 하재훈은 "야수는 스프린트 달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달려야 한다. 갑자기 방향을 확 트는 게 가능해야 하는데,
4년 공백이 있다 보니 아직 적응하는 중이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몸이 풀리면 자연스럽게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관건은 타격이다. 수비나 주루는 어느 정도 만회가 가능하지만, 타격에선 4년 이상 공백을 단숨에 채우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연습 배팅 때도 가운데와 바깥쪽으로 형성된 공은 처음부터 자신있게 배트를
휘둘렀지만, 몸쪽으로 파고드는 공에 타이밍을 잡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김원형 감독은 "이제 타자로 전향한
만큼 많이 쳐보고 스스로 느껴봐야 한다. 공백기를 얼마나 빨리 단축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했다.
하재훈은 "감이 올 듯 말 듯하다가 조금씩 밸런스가 잡히고 있다"면서 "한동안 공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공과 잠시 멀어졌었는데, 다시 공과 가까워지려고 하는 중이다.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사람과 만나 밥 먹는 자리처럼 어색한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눈도 잘 마주치기 힘든 어색함. 그러나 한번 물꼬만 트면 다시 빠른 속도로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런 사이. 멀어졌던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고 자주 연락하고 만나듯하재훈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치고 또 치며 타격감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마이너리거 시절 하재훈은 근성과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를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투수가 된 뒤에는
그 공격성을 무기로 타자를 압도했다. 그는 "투수에게도 공격성이 필요하다. 공격성 없는 투수는 없다.
그냥 던지는 공과 내가 공격성을 갖고 던지는 속구는 완전히 다르다. 마무리투수일 땐 그 공격성으로 타자를 잡았다"고 했다.
이제는 그 공격 본능을 타석에서 투수를 향해 쏟아부어야 한다. 하재훈은 "투수의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가면 못 치고, 타자의 마음으로 투수를 하면 못 던진다. 투수도 자기 공 던져야 하고,
타자는 자기 공을 쳐야 한다. 야구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올 시즌 목표? 20홈런-20도루" 하재훈의 패기
잠시 머릿속으로 타자 하재훈의 KBO리그 첫 타석을 그려봤다. 왠지 초구부터 크게 휘두르는 장면이 떠올랐다.
하재훈은 "어떻게 알았나"라며 "만약 첫 타석에 나가면 초구부터 휘두르고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재훈은 다시 투수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제는 바꿀 수 없다.
이젠 다시 투수로 던지면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만약 내가 20대 중반 정도 어린 나이였다면 아예
1년을 쉬었을 거다. 굳이 빨리 준비해서 다시 복귀하려는 생각은 안 했을 거다. 그런데 계속 '한 달만'
'한달만'하고 재활을 하다 보니 너무 길어지고 심적으로 지쳤다"고 했다. 외야에서 마지막 승부를 건다는 각오다.
실패에 대한 불안감도 더는 없다. 하재훈은 "처음에는 좀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하면 할수록 불안감이 커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면서 "조금씩 앞이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SSG는 현재 좌익수 자리에 확실한 주인이 없다. 팔꿈치 수술 후 재활 중인 추신수는 전반기 지명타자로만
나올 예정이다. 좌익수 자리를 놓고 오태곤과 이정범이 경쟁을 펼친다. 하재훈은 다크호스로 거론된다.
김원형 감독은 "파워나 스피드에서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당장 올해는 몰라도 꾸준하게 하다
보면 타자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며 격려했다.
올 시즌 목표를 묻자 하재훈은 "만약 1군 진입에 성공하면 20홈런-20도루에 도전하겠다"고 패기 넘치는 답을 내놨다.
20홈런과 20도루, 두 개의 숫자 안에 많은 의미를 담은 대답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세이브왕을 해냈던 하재훈의
말이라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하재훈의 목표가 이뤄진다면, SSG는 공·수·주를 다 갖춘 대형 외야수를 손에 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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