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36·kt)는 히어로즈 이적 후 부동의 4번 타자였다. 대표팀에서도 4번은 박병호였다.

 상징성이 컸다. 그리고 누구도 이 자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KBO리그 최고의 장타력을 갖춘 타자였다. 스스로도, 팬들도 4번을 당연한 자리처럼 느꼈다.

그러나 2021년은 조금 달랐다. 부상으로 고전한 박병호는 시즌 477타석을 소화했다. 

그런데 이중 4번 타순에는 265타석에 나서는 데 그쳤다. 전체 타석 대비 55.6% 정도밖에 안 됐다.

 8월 이후만 따지면 6번 타순(114타석)에 나서는 날이 4번 타순(69타석)에

 나가는 날보다 더 많았다. 더 이상 '4번 타자 박병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박병호를 영입한 kt는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을까. 

시즌 중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야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주 단순명료하다. 이강철 kt 감독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4번 타순에 넣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감독은 "4번 타자는 

4번을 쳐야 한다. 그리고 박병호는 박병호다"고 덧붙였다. 확고부동한 믿음이다.

3번 타순에 강백호가 고정이라면, 4번도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박병호를 고정시키겠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박병호의 뒤를 받칠 5번 타순을 고민 중인 이 감독이다. 5번이 강하면, 박병호와 승부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마냥 유인구로 피해갈 수 없다. 이 감독은 "박병호라는 선수가 주는 위압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kt는 박병호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애쓴다. 애당초 믿음이 없으면 만 36세의 타자를 영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감독은 "홈런 20개는 칠 것"이라고 했다. 나도현 kt 단장도 "상대가 약점도 알겠지만,

 타구 속도는 전혀 빠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실제 지난해 박병호의 평균 타구 속도는 약 140㎞ 정도 수준이었다. 박병호보다 평균적으로 더 강한 타구를 날린 선수는

 리그에서도 5명이 채 안 된다. 원초적인 힘, 공에 힘을 전달하는 기술 모두 아직은 노쇠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박병호도 올 시즌을 벼른다. 이른바 '에이징커브' 논란을 잘 알고 있다. 파워히터들은 에이징커브에 더 

민감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항상 차분하고 비교적 밝은 어조의 박병호지만 이 이야기에는 "나는 스스로 화가 났다.

 주변에서 에이징커브 이야기가 나오고 했을 때, 어떤 선수가 그것을 인정하고 싶겠나"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결국 성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박병호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부상과 더불어 심리적인 위축이 부진의 원인이었다고 진단하는 박병호다. 야구를 하면서 항상 고민이 많았던 스타일이다. 

스스로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를 이겨낸 경험이 더 많다. 이를 아는 kt는 부담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박병호는 "FA로 처음 계약할 때 '우리는 그렇게(에이징커브라고) 생각을 안 한다, 

다시 한 번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하셨다. 너무 감사했다"고 강조했다.

박병호도 더 당당한 시즌을 예고했다. 박병호는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 있는 상태라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정교함을 요구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내 장점을 살려야 하는데 살리지 못했다. 위축되다보니 당연히 타율이 

떨어질 수박에 없었다"면서 "기술적인 느낌보다는 심리적으로 좀 안정이 되고, 삼진을 먹었을 때 조금 더 당당하게 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파워를 낼 수 있지 않을까"고 이야기했다. 구단은 믿는다. 거포도 가슴을 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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