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얘기에도 농담을 잘 섞는 감독이지만 그날 만큼은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각색하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지난 20일 유희관(36)이 은퇴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 나온 김태형 두산 감독은 꽃다발 

증정 행사 뒤 회견장 밖으로 나갔지만 바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 감독은 유희관이

 앉아있는 테이블 먼쪽 출입구 벽에 몸을 기대면서 안쪽 풍경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서운한 표정을 이내 감추지 못하고 혼잣말 하듯 한마디를 툭 던진다. “FA 계약이라도 한번 (제대로) 하고 은퇴했으면 좋았을텐데…”

FA 계약 이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유희관은 2020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어 1년 총액 

10억원에 계약을 했다. 다만 인센티브 7억원에 이르렀던 가운데 지난 

시즌 최악의 부진을 보인 것을 감안하면 인센티브 7억원 중 일부만을 확보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희관은 풀타임 1군 4년만인 2017년 연봉 5억원 고지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FA 계약 내용 중 인센티브 내역을 제외하면 데뷔 이후 누적 연봉 총액은 29억1200만원으로 30억원을 밑돈다.

유희관은 프로 통산 101승(69패)을 거뒀다. KBO리그 역대 100승 고지를 밟은 투수는 외국인선수

 1명(더스틴 니퍼트)을 포함해 총 32명. 이 가운데 소위 ‘FA 대박’을 터뜨리지 못한 선수는 꽤 많다.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1990년까지 무대를 누빈 선수들은 FA 제도와는

 완전히 무관했거나 관련이 있어도 ‘맛보기’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대 전성기를 달린 100승 투수 중 FA로 웃지 못한 선수는 유희관이 유일하다.

2010년대 들어서는 총액 100억원 전후의 대형 계약이 심심찮게 터졌다.

 이 시기에 정점을 달린 선수들 대부분은 FA로 목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유희관과 비슷한 또래로 비슷한 시기에 리그 간판 투수로 활약한 장원준(38·129승)은 

4년 84억원, 차우찬(35·112승)은 4년 95억원의 FA 계약 이력이 있다.

유희관이 이들과 달리 FA 계약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출발이 늦었기 때문이다.

1986년생 대졸 신인으로 2009년 두산 유니폼을 입은 유희관은 우리나이로는 28세이던 2013년에야 1군 선수가 됐다

. 그해 바로 10승 이력을 남기며 승수 쌓기에 속도를 냈지만 FA 자격 취득을 위한 시즌을 보내며 전성기도 함께 보냈다.

‘느림의 미학’으로 통한 유희관은 유별난 선수 인생을 보냈다. 가장 느린 공을 던진 100승 투수라는 

타이틀을 남긴 가운데 돌아보면 높은 가성비를 보인 100승 투수로도 손꼽힐 듯하다.

김태형 감독은 지난해까지 한국시리즈에 7회 연속 오르는 동안 여러 제자들에게 FA 대박 기회도 안겼다. 

그런 선수가 특히 많았던 두산이었기에 김 감독에게 유희관은 또 달리 보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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