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다.’
쇼트트랙 대표팀 ‘맏언니’ 김아랑(고양시청)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대회 마지막에는 이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싶다고 했다.
‘맏형’인 곽윤기(고양시청)과 함께 한 다짐이었다.
그리고 한국 쇼트트랙은 또 한번 해냈다. 지난 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여자 1500m에서 최민정(성남시청)이 금메달,
남자 5000m 계주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최종 금메달 2개(남자 1500m 황대헌·여자 1500m 최민정),
은메달 3개(남자 5000m 계주·여자 3000m 계주·여자 1000m 최민정)를
획득하며 이번 대회 출전국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한 편의 기승전결이 완벽한 영화 같은 서사를 썼다.
대회 개막 직전까지 쇼트트랙의 전망에는 먹구름이 꼈다.
대표팀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했던 여자 대표팀의 심석희(서울시청)가 지난해
10월 2018 평창 올림픽에서 대표팀 코치와 주고 받은 사적 메시지가 누출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메시지 내용에는 대표팀 동료들과 코칭스태프를 험담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여기에 함께 거론됐던 최민정은 적지 않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결국 심석희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자격정지 2개월 징계를 받아 올림픽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심석희가 끝까지 올림픽 출전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사안은 법원까지 갔다.
법원은 심석희가 주장한 빙상연맹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징계가 부당하다며 제기한 징계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 과정이 다 끝난 날은 1월18일로 올림픽 엔트리를 확정해야하는 1월23일을 5일 앞둔 상황이었다.
빙상연맹은 1월20일 경기력향상위원회를 열어 올림픽에
출전할 남녀 5명씩 총 10명의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을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고심이 있었다.
지난해 11월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대회 중 넘어져 발목뼈까 부러지는 부상을 입은 김지유는
수술까지 받고 대표팀 합류를 노렸으나 최종 명단에 합류하지 못했다.
김지유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출전권을 박탈당해 억울하다”며 심정을 밝혔다.
베이징행 비행기를 탄 동료들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 속에서 대회를 준비했다. 개인전,
단체전 멤버가 정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손발을 맞출 시간도 부족했다.
게다가 우려했던 중국의 ‘홈 텃세’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또한 경기장의 빙질도 선수들을 괴롭혔다.
한국은 첫번째 메달을 기대했던 2000m 혼성계주에서 박장혁(스포츠토토)가 넘어지면서 예선 탈락했다.
게다가 여자 500m에서는 에이스 최민정이 넘어지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편파 판정의 영향이 한국에게도 미쳤다. 남자 1000m에서는 황대헌과 이준서가
석연치 않은 실격 판정을 받았고 이들이 빠지면서 결승에 오른 중국은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쇼트트랙은 마냥 무너지지 않았다. 선수단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를 통해
적극적으로 항의를 했다. 이 과정을 겪으며 쇼트트랙 대표팀은 더 똘똘 뭉쳤다.
반전의 계기는 금메달이었다. 황대헌이 남자 1500m에서 이번 대회 첫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어 최민정도 메달 레이스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여자 1000m에서 은메달, 여자 3000m에서 은메달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쇼트트랙 마지막 경기에서는 금메달 1, 은메달 1개를 추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최민정은 여자 1500m에서 2연패 달성은 물론 한국 동계올림픽 사상 최다 메달 타이 기록(금3·은2, 5개)을 세웠다.
쇼트트랙의 금빛 명맥도 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눈물과 웃음을 모두 보여준 최민정은 최고의 엔딩을 만들어냈다.
그는 “1000m 끝나고 많이 울어서 후련했다. 그때 잘 털어내서 다음 종목부터는 기뻤다”고 말했다.
이어 “나 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노력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서 ‘쇼트트랙은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지킬 수 있었다.
대표 선수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한국 대표팀은 당초 내세웠던 금1~2개와 종합 15위라는 목표에 성큼 다가섰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끝나고도 직면한 과제가 있다.
한국 쇼트트랙은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감독 공개 채용에
나섰지만 적절한 인물을 찾지 못하면서 전담 코치 체제로 이번 대회를 치렀다.
한국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전력이 노출되고 있다.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한만큼 그만한 지원이 바탕이 되어야한다.
심석희 복귀 등의 사안도 아직 남아있다.
한편 김선태 감독과 안현수(러시아 명 빅토르 안) 기술
코치를 선임하며 단단히 별렀던 중국은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차지했다. 편파 판정 등으로 전세계의 비난을
받았던 중국은 그토록 바랐던 세계 최강의 자리는 빼앗지 못했다.
이어 여자 간판 쉬자너 스휠팅을 앞세운 네덜란드는 금2개, 은1개, 동1개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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