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홍명보가 주는 다수의 이미지 중 하나는 정갈한 수트를 입고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열정적으로
지시하는 모습이다. 선수 시절과 달라진 게 없는 길쭉한 체형은 수트와 잘 어울린다.
그런데 울산현대 부임 후 홍명보 감독은 수트보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벤치에 앉는 모습이 익숙했다.
지난해를 통틀어 수트를 입은 것은 첫 인사 자리였던 홈 개막전이 유일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홍명보 감독에게 왜 수트를 입지 않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많은 것이 불안정하다고 느꼈다. 내가 울산이라는 팀도, K리그도 잘 모르니까 거기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울산 집에도 수트는 아내가 몇벌 가져다 놨지만 옷장에만 넣어뒀다"고 답했다. 그 뒤에는 "다음 시즌에는
팀이 많이 안정적으로 갈 것 같다. 울산이라는 팀에 대한 자신감과 여유가
생기면 수트를 입어볼까 생각 중이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2년차인 올해 홍명보 감독은 수트를 입고 경기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홈 경기에서는 수트를 입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6일 열린 전북현대와의 원정 경기에서도 수트를 입고 나섰다.
그의 옷차림은 팀의 운영과 경기력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개막 후 4경기에서 3승 1무. 울산은 시계 제로 상태인 2022시즌 K리그1에서 예상대로 가고 있는 유일한 팀이다.
단 1실점만 허용하며 12개 팀 중 홀로 무패를 기록 중이다. 득점력에 대한 과제는 있지만,
갑작스러운 공격진의 선수 유출을 감안하면 잘 대응하고 있다는 평이다.
개막전에서 김천상무의 수비벽을 뚫지 못하고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개막을 앞두고 긴급 영입한 엄원상으로 한숨 돌렸지만, 하창래의 퇴장으로 인한 수적 우세에서 끝내 득점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20개의 슈팅과 10개의 유효슈팅을 날리고도 골망을 흔드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개막전의 내용에 주목했다. 그는 "바코를 최전방에 세우는 제로톱 전술을
준비한 시간이 얼마되지 않았다. 결정력은 아쉬웠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플레이는 잘 됐다.
찬스도 여러 차례 나왔다. 내용이 좋으면 결국 문제는 해소될 것이다"라며 팀의 우상향에 대한 확신을 나타냈다.
그 이후 전개되는 상황은 홍명보 감독의 예상대로다. 2라운드 성남 원정에서는 아마노 준의 맹활약으로
2-0 승리를 거뒀다. 3라운드 수원FC와의 홈 경기에서는 선제 실점을 하고,
바코가 2경기 연속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위기를 맞았지만 결국 역전승을 거뒀다.
빠른 좌우 전환과 침투 플레이로 김민준의 동점골을 만들었고, 바코가 개인
능력을 이용한 결승골로 결자해지했다.
4라운드 전북전은 시즌 초반의 기세에 기폭제가 됐다. 경기 내용은 앞선 3경기처럼 압도하진 못했지만
단단한 후방 수비를 앞세워 전북의 공세를 차단했다. 거기다 새 외국인 공격수 레오나르도가 교체 투입된
지 10분 만에 결승골을 뽑아냈다. 수원FC와의 경기부터 투입된 레오나르도는 팀이 기대한 좋은
침투 움직임, 수준급의 볼 컨트롤 능력을 이용해 빅매치의 승부사가 됐다.
홍명보 감독도 초반에 팀이 보여주는 내용과 결과에 만족하는 모습이다. 올 겨울 시즌을 준비하며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더욱 완벽한 경기 통제였다. 지난 시즌에도 울산은 경기를 지배하고 빠른 전환과 전진을
통해 상대를 무너트렸다. 그러나 승부를 확정지어야 하는 경기를 놓쳤다. 10월 있었던 AFC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와 FA컵 준결승에서 차례로 무너진 것이 소위 스노우볼 효과를 일으켰고,
트레블을 노리던 상황에서 무관으로 전락했다.
밖에서는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문제를 1번으로 꼽았지만 홍명보 감독의 시각은 달랐다.
이기거나 비길 수 있는 경기에서 미드필드와 수비에서 확실히 컨트롤하지 못한 총 10분도 안 되는 시간을
실패의 요인으로 봤다. 그로 인해 또 한 번의 리그 우승이 날아가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4강에서 진격을 멈췄다는 견해였다.
새 시즌을 위한 선수 보강의 시작을 김영권으로 삼은 것도 그 부분에 대한 개선이 1번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센터백 불투이스(현 수원삼성)의 수비 능력과 적극적인 공격 가담은 리그 전체에서도 높이 평가받지만,
홍명보 감독은 더 차분하고 조직적으로 대응하며 뛰어난 탈압박과 빌드업으로 팀의 강력한 2선과 양 풀백의
수비 가담을 살리길 원했다. 김영권은 동계훈련 기간 대부분을 대표팀에 가 있는 바람에 팀 훈련 기간이 짧았지만 김기희,
임종은 좋은 호흡을 맞추며 안정된 후방을 이끌고 있다. 전북전에서 상대가 특유의 저돌적인 공격으로 밀고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1차, 2차 수비에서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아마노 준과 이규성이 가세한 미드필드진도 홍명보 감독의 구상대로 작동 중이다.
울산은 겨울 동안 윤빛가람과 과감히 작별했다. 이동경도 예정대로 독일 무대로 떠나며 3선을 제외한 중앙
구성을 새롭게 해야 했다. 외부의 우려에도 홍명보 감독은 시즌 구상을 얘기할 때마다 "이동경의
대체자는 아마노 준이고, 윤빛가람의 대체자는 이규성이 될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스타일 면에서 아마노 준과 이규성이 강력한 왼발을 이용한 클러치 능력이 빛나는 이동경, 한국 역대
최고의 패스 센스를 지닌 윤빛가람의 완벽한 대체자는 아니다. 하지만 아마노 준은 상대의 박스 안쪽으로
침투하는 설영우, 김태환의 발에 정확히 도달하는 패스를 수비수 너머로 넣어줄 수 있다. 한층 빨라진 울산의
좌우 전환 플레이의 키다. 이규성은 특유의 탈압박 능력과 안정된 패스로 후방에서 넘겨 받은 공을 빠르게 운반한다.
많은 활동량을 살린 수비 능력까지 갖고 있어서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투 보란치로 타협해야 했던
홍명보 감독이 다시 4-1-4-1 포메이션을 가동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경기에 대한 통제는 장현수까지 가세하면 한층 좋아진다. 장현수는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울산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홍명보 감독은 장현수가 합류할 경우 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쓰거나,
공격적인 3백의 활용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마지막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최전방이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홍명보 감독을 괴롭힌 요소다.
오세훈마저 바이아웃 조항으로 떠나면서 위기의식이 가중됐지만, 그것도 바코나 엄원상,
윤일록을 이용한 전술적 대안으로 어느 정도 극복했다. 레오나르도까지 중요한 상황에서 득점을
가동해주며 팀 전체가 조급함을 끄고 자신감을 높이게 됐다.
현재 추진 중인 외국인 공격수 보강이 마무리되면 다양한 옵션을 쥐게 된다.
울산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제작, 공개 중인 다큐멘터리 '푸른파도'에서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과의
미팅에서 "(올해가) 지난해보다 훨씬 좋아. 그래도 1년을 같이 했기 때문에 올해는 예측을 할 수 있을 거 같아.
내가 좋은 선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기 다 있으니까 도전해보자고"라고 얘기했다. 시즌 개막 전에는
그 상황이 이동경, 이동준, 오세훈을 잃은 당혹스러움에 대한 과장된 반응으로 볼 수
있었겠지만, 4라운드를 마친 지금은 홍명보 감독의 확신을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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