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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쟁이티비 0 446 2022.03.10 09:13

페퍼저축은행 하혜진에게 2021-2022시즌은 특별하다. 

2014-2015시즌 데뷔 후 처음으로 주전으로 시즌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포짓 스파이커에서 미들블로커로 포지션도 전향한 가운데 페퍼저축은행의 중앙을 든든하게 책임지고 있다. 

데뷔 후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기에, 하혜진을 찾는 사람은 많아졌다. 

<더스파이크>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페퍼저축은행 연습체육관으로 가 하혜진을 만나고 왔다. 

아름다운 미소, 모델 뺨치는 포즈로 취재진을 반겨준 하혜진. 

누군가의 딸이 아닌 배구 선수 하혜진의 모든 것을 지금부터 독자들에게 전한다.

 (인터뷰는 2월 초 진행됐습니다.)


풀타임 주전으로 치르는 첫 시즌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재밌어요”


하혜진은 데뷔 시즌부터 2020-2021시즌까지는 도로공사에서 쭉 선수 생활을 이어왔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다르다. 2020-2021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은 하혜진은 FA 시장이 마감될 때까지 소속팀을 찾지 못했다. 

미계약 FA로 원래라면 2021-2022시즌 어느 구단과도 계약을 체결할 

수 없었지만 페퍼저축은행 그리고 김형실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사실 미계약으로 남았잖아요. 배구판에 발을 못 디딜 수도 있었죠. 

김종민 감독님께서도 해주신 이야기가 ‘아직 안 된다. 이르다. 포기하면 안 된다’라고 하셨거든요. 

그래도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우울증 같은 게 왔었거든요. 혼자 방에 들어가면 안 좋은 생각도 들고,

 가족들도 보기 힘들었고요. 경남 진주에 내려가 앞길을 생각하려고 하던 차에 

김형실 감독님께서 연락을 주셨죠. 다시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저를 믿어주셨어요.”


신생팀에서 시즌을 소화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페퍼저축은행은 객관적인 전력의 한계를 느끼며 시즌 3승에 머물고 있다.

또한 하혜진은 문슬기(1992년생) 다음으로 팀에서 나이가 많다.

 이전과는 분명 다른 위치에서 시즌을 치르고 있으니 마음의 부담이 크다.


“다른 시즌과는 다르게 분명 마음의 무게가 있죠. 짊어가야 할 게 많아요. 

저만 생각하면 안 되잖아요. 도로공사 시절에는 저만 생각했어요. 제 것만 챙기면 됐고요. 

그런데 여기서는 아니잖아요. 주장인 (이)한비랑, 슬기 언니랑 끌고 가야죠. 

주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요. 훈련할 때도 리드하려고 하고요. 

다른 선수들의 훈련 자세도 봐주며 함께 성장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풀타임 주전으로 시즌을 소화하고 있기에 체력적인 부담은 있다.

 하지만 경기보다 훈련이 더 힘들다는 게 하혜진의 이야기다. “솔직히 경기 뛸 때는 하나도 안 힘들어요. 

재밌어요. 연습 때 했던 게 경기에 나오면 뿌듯해요. 훈련이 힘들죠. 

경기에서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훈련을 하는 거잖아요. 준비 과정에서 몸을 키우고, 

먹고, 디테일한 부분을 계속해서 맞춰야 하니 힘들지 않나 싶어요.”


데뷔 첫 풀타임 주전으로 리그를 소화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또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올 시즌을 앞두고 아포짓 스파이커에서 미들블로커로 포지션 변경을 꾀했다. 

물론 미들블로커 포지션이 어색한 건 아니다. 도로공사 시절에 미들블로커로

 간혹 경기를 뛴 적이 있다. 하지만 이처럼 한 시즌을 풀로 소화한 적은 없었다.


“솔직히 아포짓 스파이커를 포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쉬움이 컸죠. 

아포짓에서 더 뛰고 싶었어요. 아포짓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 있어요. 

후위 공격 득점을 성공했을 때의 쾌감이 좋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그런 희열을 못 

느낀다 하니 ‘내가 다른 거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었죠.”


처음에는 아쉬움이 컸지만 지금은 미들블로커에서 뛰는 게 편하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고,

 새로운 배구의 흥미를 알게 됐다. 페페저축은행 창단 첫 득점의 주인공도 하혜진이다. 

하혜진은 지난해 10월 19일 페퍼스타디움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전 1세트 0-1에서 

한송이의 공격을 블로킹했다. 미들블로커 자리에서 올린 의미 있는 득점이었다.


“솔직히 새로운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재밌더라고요. 빨리빨리 플레이해야 하는 것도 색다르고, 

자잘한 부분들을 도와줘야 해요. 요즘 푹 빠진 게 이동 공격이에요. 

처음 배우고 있는데 재밌어요. 블로킹 쾌감도 느끼고 있고요.”


하지만 부족한 점은 많다. 전문 미들블로커로 전향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기에 어찌 보면 당연하다

. 하혜진은 “상대팀 세터와 수싸움하는 게 가장 힘들다. 그래서 영상을 많이 돌려보는 것 같다.

 또한 이제 상대팀에서 나를 다 파악했다. 처음에는 기본 공격만 할 줄 알았다. 

이제는 다른 공격도 하려고 노력 중이다”라고 말했다.


“힘들었어요”

이 한 마디에 담긴 옛 시절의 아쉬움

선명여고 재학 시절 하혜진은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연령별 대표팀에 

이름을 자주 올렸고 이재영-이다영-지민경 그리고 친언니인 하정민과 함께 선명여고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혜진은 “그때를 생각하면 프로에 가려고 앞만 본 것 같다. 언제나 내 목표는 프로 선수였다.

 딴 거 생각 안 했다. 실업팀, 대학교도 생각 안 했다”라고 힘줘 말했다.


2014-2015시즌을 앞두고 1라운드 3순위로 한국도로공사 지명을 받았다. 

많은 기대를 받고 프로에 입성했지만 성적은 아쉬웠다.

 외인이 주로 뛰는 아포짓 스파이커 자리에서 기회를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한된 출전 기회 속에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줘야 했다. 리그 전 경기 출전은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했다. 

데뷔 시즌에는 5경기 출전에 머물면서 동기들보다 FA 자격 취득도 한 시즌 늦을 수밖에 없었다. 

득점 커리어 하이는 2019-2020시즌에 기록한 162점. 프로 6년차가 되어서야 처음 올린 세 자릿수 

득점 기록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보여주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게 하혜진의 이야기다.


“정말 힘들었어요.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왜 나만 뒤처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갈피를 잡지 못했죠. 계속 망설임에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의 경험과 기억은 지금의 하혜진을 있게 했다. 정대영, 배유나,

 임명옥 등 언니들과 함께 했던 시간은 돈 주고도 사지 못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언니들이 했던 행동, 말 등을 생각하고 있고, 그 배움을 고스란히 페퍼저축은행 

동생들에게 전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그때의 힘든 시간은 약이 됐다.


“도로공사에서 동생들 케어해주는 거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를 배운 것 같아요. 

배운 부분이 너무 많아요. 고비 넘는 부분,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를 언니들 보면서 배웠어요. 

미들블로커로 전향한다 했을 때도 유나 언니와 대영 언니가 알려줬던 부분을

 계속 생각했어요. 도로공사 시절에 알려줬던 공격 스윙, 폼, 스텝 등을 기억했죠.”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은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배구를 더욱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저는 여전히 배구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느 포지션이든 코트 안에 있는 게 좋아요.”


“아버지와 언니는 내게 큰 힘”

“어머니는 정말 대단하신 분”


하혜진의 집안은 스포츠 가족이다.

 아버지는 배구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하종화 진주동명고 배구부 감독이다. 

하종화는 한국을 대표했던 거포였다. 1990-1991 대통령배 대회에서 

맹활약하며 한양대가 대학팀 최초로 대통령배 정상을 차지하는 데 힘을 줬으며, 

실업팀 현대자동차에서도 맹활약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현대캐피탈 감독을 맡기도 했다.


한 살 위 언니인 하정민도 배구 선수 출신이다. 하혜진과 함께 경해여중, 

선명여고에서 배구 생활을 같이 했다. 하정민은 프로 선수의 

길을 걷는 대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로 들어갔고,

 지금은 졸업 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신광여고에서 체육교사로 재직 중이다.

 일곱 살 아래인 남동생 하혜성은 덕수고 졸업 후 2022 KBO 신인

 드래프트 2차 5라운드 44순위로 롯데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다.


하혜성의 쌍둥이 여동생을 제외하고는 가족 모두가 운동을 했거나, 

지금도 운동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어머니의 절대적인 희생과 도움이 없었다면 힘을 내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하혜진 역시 “어머니는 먹는 거부터 시작해 자는 거까지 모든 부분을 다 챙겨주셨다.

한약, 산삼 항상 챙겨주시고, 저 살 찌우게 하려고 프로틴도 공수해 챙겨주셨다. 

엄마는 대단한 분이시다.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라고 설명했다.


어머니의 노력, 희생, 고생도 지금의 하혜진을 있게 하지만, 

하혜진에게 있어 아버지의 존재감 역시 매우 크다.

힘들 때마다 찾는 사람이 늘 아버지였다. 

배구가 풀리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아버지가 큰 힘을 줬다. 

물론 언니의 영향력도 없는 건 아니었다.

 한 팀에서 뛰면서 동생의 마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은 언니가 맡았다. 

아버지는 밖에서, 언니는 안에서 하혜진에게 큰 힘이 됐다.


“배구는 아버지, 심적으로는 친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언니는 저랑 같이 배구를 했기 때문에 제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스타일인지 알아요. 저를 바로 세워주는 중심이었죠. 

아버지는 제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못 해도 뭐라 하지 않아요. 

아버지가 딸바보에요.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힘들 때 늘 아버지가 옆에 있었어요. 

따로 불러서 햄버거 사주시고, 먹는 동안 절대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으세요.

 제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다 먹고 나서 마음에 

담아둔 거를 하나둘 이야기하면 그때 아버지도 말을 시작하세요. 

인생 선배, 배구 선배로서 말을 해주시면 저는 거기에 마음에 위안도 받고, 

힘도 얻고요. 지금도 따뜻하신 분인데 어릴 때는 더 따뜻한 분이었던 것 같아요.”


이전에 하혜진이 했던 인터뷰 기사들을 보면 “아버지가 선수 출신,

 배구 지도자이다 보니 부담이 많이 됐다”라는 내용이 많았다.

 지금도 배구 스타 출신 아버지의 존재감이 부담일까. 그의 대답은 ‘No’였다.


“도로공사에 있을 때는 정말 부담이었어요.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고,

 제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빠였기에 자랑하고 싶었나 봐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저를 먼저 생각하려고 해요. 내 인생이잖아요. 

지금은 편안해요. 아빠도 부담감 갖지 않는 저를 더 좋아하시고 때로는 칭찬, 

때로는 격려를 해주시고요. 이전과는 다르게 부담감이 사라졌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제 롤모델은 아버지였어요.

 아버지가 상대방에게 대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어요. 

신사답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절대 피해를 안 끼치려고 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물론 아버지가 어떻게 운동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죠. 그런데 여러 사람들이 아빠가 ‘예전에 잘했다’, 

‘난리 났었다’라고 말하잖아요. 괜히 제가 뿌듯하고, 더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죠.”


이한비를 바라본 하혜진

“지금 가장 힘들 친구”


배구 선수 하혜진이 아닌 20대 숙녀 하혜진은 어떤 사람일까.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에서 하혜진은 ‘ISFP’가 나왔다고. “내향적이고 먼저 말을 못 해요.

 낯을 많이 가려요. 소녀 같은 사람?(웃음) 조용하고 전시회 보는 것을

 좋아해요. 한강 가거나 힐링 하는 거 좋아해요.”


만약 배구 선수를 안 했다면 지금 하혜진은 뭘 하고 있을까. 

지금쯤이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거나,

 사회 초년생으로서 사회에 뛰어들지 않았을까.

 “배구를 지금 안 하고 있더라도 배구 경기는 보러 다녔을 것 같아요. 

지금 배구 안 하는 제 친구들도 배구를 잊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배구 관련 일을 안 한다면 모델 쪽? 예전에 모델 제의가 

한 번도 온 적도 있는데 그걸 했을지는 모르겠네요(웃음).”


동갑내기이자 ‘할무니’, ‘할부지’로 불리며 페퍼저축은행

 팬들의 사랑을 차지하고 있는 이한비와 케미도 환상적이다.

 서로의 방에서 고민 이야기도 하고, 팀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며 찬란한 내일을 꿈꾸고 있다. 

하혜진 역시 부담감을 갖고 경기를 하지만, 이한비에 비하면 자신의 부담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한비 어깨에 있는 주장의 무게, 고충, 부담은 겪은 자가 아니라면 느낄 수 없다.


“한비랑은 고민 이야기도 많이 하고, 애들 케어 같은 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많이 해요. 

팀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고요. 팀 분위기를 올려야 되잖아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하고요. 과자 뜯어 먹으면서 편안한 이야기도 하고요.”


“사실 한비가 지금 가장 힘들 거예요. 모든 팀의 주장은 다 힘들어요. 

그런데 한비는 신생팀 주장이고 아직 나이가 어리기에 책임감, 무게감이 배로 들 거라 생각해요. 

저는 감독님 다음이 주장이라 생각해요. 자기만 생각해도 힘든데 선수, 

팀 케어 등 모든 것을 다 생각해야 하잖아요. 많이 힘들 거라 봐요.”


“코트 위에 밝은

혜진이 없으면 안 된다”


올 시즌 페퍼저축은행의 성적은 저조하다. 3월 10일 기준, 

승점 11점 3승 28패로 리그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이미 모두가 예상한 성적이었다. 

선수단 대부분이 경험이 적으며, 주전으로 시즌을 소화한 선수도 몇 없다.

 기대치가 컸던 신인 1순위 세터 박사랑은 부상으로 출발이 늦었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 팬들은 졌다고 선수들을 질책하고 비판하지 않는다. 

지금의 시련과 아픔은 내일의 희망과 달콤한 열매가 될 거라 굳게 믿는다. 

홈, 원정 가리지 않고 페퍼저축은행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경기장을 찾아가 선수들을 응원한다. 

하혜진 역시 저조한 경기력에도 팀과 자신을 응원해 주는 팬들이 진심으로 고맙기만 하다.


“많이 성장해야 하는 건 맞아요. 우리는 아직 부족해요. 하지만 이것도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마음이 아픈 건 팬분들이 계속 괜찮다고 격려해 줄 때예요. 미안함이 커요. 

제가 최근에 SNS를 다시 시작했는데요. 메시지가 정말 많이 와요. 경기 결과는 상관없다고, 

우리를 응원하러 왔는데 우리 경기를 보고 힘을 얻고 간다고 해요. 너무 감동이고, 뭉클했어요.

 한 번은 ‘혜진아, 넌 잘 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라는 글을 딱 받았을 때 정말 큰 힘을 얻었어요. 

쉬는 날에도 많은 응원해 주시고요. 아직 팀에 어린 선수들이 많잖아요. 

무너지지 않게, 기죽지 말라고 하시거든요. 큰 힘을 얻습니다.”


어쩌면 하혜진의 배구 인생은 올 시즌 전과 후로 나뉜다. 처음 주전으로 시즌을 소화하고, 

또 익숙지 않은 풀타임 미들블로커로 새로운 배구 인생의 길을 열었다.


“올 시즌 초반에는 불안했어요. 준비된 게 없고, 포지션도 아예 바뀌었잖아요. 

사실 시즌 시작 전만 하더라도 아포짓이랑 미들블로커 두 개를 동시에 준비했어요. 

그런데 한두 경기 지나고였나? 감독님께서 ‘혜진아, 그냥 미들블로커만 할래?’라고 물어보셨어요. 

저도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불안하지만 저는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잖아요. 

많은 분들의 눈에는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열심히 하고 있고요. 

그래도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어 나름 뿌듯합니다.”


미들블로커는 아포짓 스파이커와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공격 스텝도 다를뿐더러,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새로 배운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 하혜진은 미들블로커 롤모델도 정했다. 

한국도로공사 배유나, 흥국생명 김나희는 하혜진이 닮고 싶어 하는 선배 미들블로커다.


“미들블로커는 블로킹이 중요해요. 블로킹에 따라 수비 위치도 달라지고요.

 블로킹을 더 중점적으로 훈련해야 될 것 같아요. 

상대팀 세터와의 수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고요. 

또 미들블로커는 빨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많이 

참고하는 선수가 도로공사 배유나 언니랑 흥국생명 김나희 언니에요. 

나희 언니가 진짜 빨라요. 옛날부터 나희 언니 보면서 ‘작은 키여도 할 수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저도 키가 큰 편이 아니다 보니 나희 언니가 눈에 보이더라고요.”


배구 선수로서 그리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도 한 마디 더한 하혜진이다. 

“선수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올림픽에 한 번 나가보고 싶어요. 어느 포지션으로 나가든 상관없어요(웃음).”


어느덧 인터뷰를 마칠 시간이 다가왔다. 사진 촬영부터 시작된 인터뷰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지친 기색을 보일 수도 있었지만 하혜진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답변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했다. 

“<더스파이크> 인터뷰가 이렇게 재밌는 인터뷰인지 몰랐어요. 새로운 경험을 해서 좋았고요.

 가족들에게도 자랑할 거리가 생겨 좋아요. 나중에 팀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한 번 더 와주세요.”


끝으로 하혜진은 “팬들에게 ‘코트 위에 밝은 혜진이 없으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항상 웃으며, 스트레스 받지 않고 배구에 임하겠다”라며 

“우리 선수들 지금 모두 열심히 잘 하고 있으니 남은 경기도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선수들과 부상 없이 시즌 마무리 잘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누군가의 딸이 아닌 배구 선수 하혜진의 배구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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