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제24대 대한럭비협회 회장에 취임한 최윤
OK금융그룹 회장에게 지난 1년은 파란만장한 시간이었다.
도쿄올림픽 출전, 럭비세븐스월드컵 본선 진출 성공 등 기쁜 순간도 많았다.
주요 일간지와 지상파 방송에서는 처음으로 럭비를 메인 뉴스에서 다뤘다.
럭비선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최윤 회장 입장에선 어려움도 많았다. 밖으로 보이는 성과와는 별개로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는데 장애물이 많았다. 뿌리 깊게 박힌 관행을 바꿔나가려는 노력이 만만치 않았다.
본인 스스로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라는 반성을 한다”고 말할 정도다.
최윤 회장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1년 동안 럭비인들에게 감동을
안겨드리려 노력했지만 아직 미약한 점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 럭비의 가능성도 발견했다. 지금의 노력을 계속
이어간다면 언젠가 새로운 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최윤 회장은 “지금부터 8년 뒤에는 일본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학교 스포츠로 럭비를 보급하고 럭비 코리아리그 출범을 통해 럭비를
‘비인지스포츠’에서 ‘인지스포츠’, 그 다음에 ‘인기스포츠’로 올려 놓겠다”는 목표를 강조했다.
다음은 최윤 대한럭비협회 회장과 일문일답.
-럭비협회 회장에 취임한 지 1년이 됐다. 그동안의 소감을 전한다면.
△20~30년간 오랜시간 럭비계에 몸담아 왔던 분의 많은 요청 및 불만을 제대로 개선하지
못했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1년 동안 그분들에게 감동을 안겨 드리고 상황을 바꾸려 노력했지만
아직 미약한 점이 많다. 회장에 부임하면서 나름 각오를 했지만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라는 반성도 한다.
-회장으로서 지난 1년간 많은 성과를 냈다. 사상 처음으로 도쿄올림픽 본선에 진출했고
17년 만에 럭비 월드컵 본선 티켓도 따냈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무엇인가.
△정말 어려운 얘기다. 협회장으로서 기뻤던 순간은 솔직히 없다. 다만 럭비인으로서,
특히 재일교포로서 도쿄올림픽에 나간 것은 정말 기뻤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럭비월드컵
예선에서 일본을 이기고 본선 진출을 이룬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개인적이다.
협회장으로선 성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거기에 만족해선 안 된다.
-두바이에서 17년 만에 한국 럭비가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뤘다.
현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하면서 직접 응원하고 격려하고 기뻐했다.
그 순간의 감정은 어땠나.
△나도 기업가다. 항상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진 희망을 가지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한 뒤에는 그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본선 진출을 이루고 나서 30분 동안은 기뻤다.
하지만 그 감동이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시안게임이나 월드컵 본선 등
다음 대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들었다.
-다소 유치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지난 1년간
럭비협회장으로 본인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겠는가.
△(웃음)80점이라고 하고 싶은데 65점이 아닌가 본다.
자신에 대한 평가는 엄격해야 한다. 남이 나를 평가할 때 어떨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한국 럭비계의 오랜 관행을 깨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럭비계에 있었던 분들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오늘날 서로 많은 정보가 오가고
바쁜 시대에서 어떻게 럭비인들과 소통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원래 하지도 않는 SNS도 시작했다.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궁금한 점에 대한 질문도 받고 지금 진행 중인
것에 대해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직도 직접 찾아와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소통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있다. 물론 그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코로나19 시대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있다. 이해를 바란다.
-OK금융그룹 럭비단을 창단했다.
럭비단을 직접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많은 럭비인들의 요청이 있었다. 그전에는 럭비팀을 만드는 것이 우선순위인가라는 고민이 있었다.
그보다는 열악한 환경에 있는 선수나 지도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협회장이
되면서 럭비단 창단이 저변 확대에 큰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받아들여 창단을 결정하게 됐다.
-OK금융그룹 럭비단은 순수 아마추어를 추구한다고 들었다.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선수들이 평소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퇴근 후에 럭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우리나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마추어 스포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선수들은 일과 중에 근무하면서 오후나 저녁 시간에 운동을 한다. 주중에는 오후에 2시간씩 이틀 동안 훈련한다.
토요일에는 4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운동한다. 대신 선수들은 회사 일을 마치고 웨이트트레이닝 등 개인 훈련을 매일 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팀 운영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길게 보면서 수정할 계획이다.
-OK금융그룹 소속 럭비 선수들에게 어떤 얘기를 많이 해주는가.
△나는 럭비단 선수들에게 두 가지 권리가 생겼다고 말한다. 첫째는 우리 회사에서 평생 일할 수 있는 권리.
둘째는 언제든지 럭비를 그만둬도 되는 권리다.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새로운 모습을 이 친구들에게
안겨주고 싶었다. 정말 좋아서 럭비를 하고 자기가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세계를 함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학교 스포츠로서 럭비의 보급을 계속 강조한. 럭비가 학교
스포츠로 뿌리 내릴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는가.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됐음에도 아직도 개발도상국 시대 국위선양 만을 위한 엘리트 스포츠의 그림자에 갇혀 있다.
이 때문에 학교 스포츠는 완전히 없어졌다. 선진국 가운데 이런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이라도 학교 스포츠를
부활시켜야 한다. 학교 수업시간에, 또 방과 후 학생들이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생활 스포츠 저변 속에서
엘리트 선수가 나오고 프로로 가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직접 해보면 꼭 엘리트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그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그 분야의 팬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 기반이 완성돼야 우리나라 스포츠가 더 발전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럭비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럭비는 15명의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단점을 서로 보완해주고 장점을 발휘해 팀으로 이기는 경기다.
사회의 축소판처럼 재미있다. 럭비는 몸을 부딪히는 종목이다 보니 무서운 것도 많다.
하지만 그 무서움을 연습을 통해 극복한다. 무서움을 극복한 사람들끼리 서로 존중하게 된다.
과감하게 팀을 위해 희생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끼리 끈끈한 연결고리가 생긴다. 인생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사회에서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럭비를 통해 얻은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
교육 현장에서 체육 활동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거기에 럭비가 좋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한국 럭비 대표팀이 올해 9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리는 럭비 월드컵에 출전한다.
우리 대표팀의 현실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1승이다. 솔직히 영연방 국가와 우리 실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 선수들이 새로운 훈련을 반복하고 전략을 배우면서 자신감이 많이 높아졌다.
좋은 역사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꼭 1승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럭비월드컵이 열린 뒤에는 2주 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금메달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진짜 목표는 아시안게임이다. 일본과 진검승부를 벌여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물론 일본은 여전히 우리보다 강하다.
정말 이기기 힘든 상대다. 하지만 럭비월드컵 예선에서 이긴 적이 있다.
일본도 단단히 준비하고 나올 것이다.
그래서 너무 재밌을 것 같다. 아시안게임에서 우리가 금메달을 딴다면 럭비가
인기 스포츠로 가는 출발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럭비 협회장에 부임한 이후 대기업 스폰서도 크게 늘어났다.
어떻게 그런 결과를 이끌어냈나.
△개인적인 부탁을 하거나 네트워크를 이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거래 회사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정말 싫었다.
다만 굴지의 대기업이 비인지 종목인 럭비를 후원하는 것이 럭비인들에게 큰 자부심이 된다는 점을 설명했다.
흔쾌히 응해준 많은 기업에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선수들이 유니폼에 붙은 기업 로고를 보면서 정말 좋아한다.
‘자기들을 이렇게 알아주는구나’, ‘스포츠로서 럭비를 인정해주는구나’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
언젠가 그분들에게 실질적인 보답을 하겠다는 마음이다.
-3월 26일부터 럭비 코리아리그가 처음으로 열린다.
럭비 리그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럭비는 23명이 벤치에 들어가야 하고 모든 선수가 교체되면서 경기에 나선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실업팀은 선수가 부족하다. 단기간 동안 일주일에 3~4번 경기를 하면 부상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수의 안전과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경기하는 리그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새롭게 출범하는 럭비 코리아리그는 제대로 된 중계방송도 하면서 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계획이다.
오랫동안 실업팀을 이끌어준 한국전력, 포스코, 현대글로비스 등에 보답하기 위해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럭비 코리아리그에는 외국인선수도 출전한다고 들었다.
△뉴질랜드, 피지, 일본 국적의 외국인선수 3명이 리그에 참여한다. 원래 20명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움이 있어 우선 3명을 데려오기로 했다. 그밖에도 리그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팀
선수들이 트라이아웃 형태로 각 팀에 임대돼 부족한 인원수를 메울 예정이다.
좋은 시합으로 럭비의 재미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이 같은 노력이 이어진다면 언제쯤 한국 럭비가 아시아 최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보는가.
△일본이 럭비를 아시아 정상으로 올려놓는 데 25년 걸렸다. 한국과 일본 럭비는 초창기에는 실력이 비슷했지만,
이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우리나라가 세계랭킹 30위인 반면 일본은 10위다. 일본을 이기려면 최소 8년은 더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번 마음먹고 노력하면 무섭게 올라가는 스타일 아닌가.
여러 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8년 정도면 일본과 대등하게 맞설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럭비협회장으로서 그리는 한국 럭비의 미래는 무엇인가.
△과거 20년간의 어려운 시대를 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관습이나 생각이 잘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바꾸지 않으면 스타트가 이뤄질 수 없다. 그래도 지금 럭비에 대한 인식이나 관심이 좋아졌다. 선수들의
자부심도 크게 높아졌다. 한국 럭비가 예전 굴레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갈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 아직도 럭비가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진다.
럭비협회장으로서 국민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가 코리안 럭비리그를 출범하고 TV 생중계를 한다. 유튜브나 포털사이트 등에서도 생중계할 예정이다.
경기 중 선수와 심판 목소리까지 생생하게 전달할 것이다. 중계방송을 통해 럭비를 이해하고 재미를 느껴주길 바란다.
럭비가 위험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아이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안전하고 재미있는
스포츠라는 것을 보여 드리겠다. 이번 리그를 통해 럭비를 많이 경험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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