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대회를 보면, 피가 끓어요.
프로 선수에서 감독-코치로 역할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작년까지 발로란트 선수로 뛰었던 '솔로' 강근철은 올해 담원 기아의 감독 역할을 맡게 됐는데요.
작년에도 팀의 오더와 방향성을 잡는 감독의 역할까지 병행했지만,
무대에 서는 것과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르다고 합니다.
프로게이머로 경력이 길어도 감독의 길은 만만치 않았죠. 올해 '솔로' 감독이 맡은 담원 기아 역시
VCT 챌린저스 코리아에서 외부의 기대보다 아쉬운 결과로 마무리했는데요. 결과를 인정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방향을 잡고 있는 '솔로' 감독의 말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Q. 감독으로 부임 후 VCT 챌린저스 코리아의 첫
스테이지를 마무리한 소감이 듣고 싶습니다.
일단 제가 감독으로 첫 시즌이었잖아요. 개인적으로 우승을 하고 싶었지만,
못해서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도 다음 시즌을 더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담원 기아가 시즌 초반부터 강팀 후보 중 하나였는데,
PO 여정이 패자조 2R에서 끝났어요.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외부에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저희가 강해 보였죠.
그런데 사실 다른 팀에서 잘하는 선수들이 오다 보니까 합을 맞추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합이 빨리 맞아야 하는데, 그 부분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Q. 각 팀에서 잘했던 선수들이 모여서 방향성을 잡기가 쉽진 않았겠어요.
기존 담원 기아 멤버들이 세 명이나 있었잖아요. 사실, 저는 제 방향성으로 갔어야 한다고 봤어요.
그렇지만 기존 담원 기아 선수들의 방향도 있었죠. 그래서 저도 변화가 조금 조심스러웠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스테이지부터는 제가 생각한 방향대로 가보려고 합니다.
Q. PO 시작할 때 홀리몰리를 상대로 2:0 완승을 했는데,
다시 만났을 때 패배하게 됐습니다.
홀리몰리는 잃을 게 없는 팀처럼 임했어요. 반대로 저희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하다 보니까 밀린 것 같아요. 물론, 프로가 핑계를 대는 게 좋지 않지만,
저희가 상대 팀보다 부담이 컸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팀원들을 지켜봤을 때 컨디션도 안 좋았어요. 평소보다 소리를 안 내고,
'파이팅'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파이팅 하자, 파이팅" 이렇게 해도 평소보다 반응이 약했어요.
상대도 저희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요원도 들고 나와서 많이 당황했고요.
Q. 마지막 상대인 홀리몰리가 요루라는 카드를 들고 왔습니다.
새로운 카드 대처가 쉽지 않았나요.
요루라는 캐릭터가 궁극기를 제외하고 그렇게 까다로운 요원이 아니라서 신경을 크게 안 쓰려고 했어요.
처음 상대할 때도 저희가 같은 맵에서 더블 스코어로 이겼거든요. 그런데 다시 만났을 때,
상대가 중요한 라운드에서 요루의 궁극기를 쓰면서 승리하니까 저희가 당황했어요. 시작 전부터 어떤
의도로 요루를 뽑았는지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진짜 왜 뽑았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나서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죠.
Q. 작년까지 선수로 활동하다가 감독의 위치에 서니까 확실히 다른가요.
제가 작년에는 선수-감독 역할을 같이 했었거든요. 그게 속은 더 편했던 것 같아요. 제가 선수를 하고 있을 때,
리더 역할을 하면서 지시하니까 답답함이 없었는데요. 이제 감독이 되고 나니까 바뀌는 상황에 맞춰서
어떤 플레이를 할지 게임 내에서 알려줄 수도 없는 거에요. 제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지식들도 한 번에 선수들에게 주입할 수 없게 되면서 답답한 점이 있었습니다.
게임 내로 들어가서 오더를 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선수로 다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죠.
Q. 그렇다면 선수를 그만둔 이유가 있을까요.
솔직히 아직도 프로게이머로 뛰고 싶어요. 대회를 보면 아직도 피가 끓기도 하죠. 감독만 하는 게
피지컬이나 게임 이해도와 같은 문제는 아니고요. 제가 나이도 들었고, 미래를 봐야 될 것 같아서
계속 선수를 할 수 없겠더라고요. 제 주위 사람들도 이제 감독-코치를 하라고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 역시 후배들한테 자리를 물려주는 게 낫기도 해서 감독 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Q. 스테이지1 PO에서 이른 패배를 통해 배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솔직히 전력상 저희가 못해도 준우승까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축구로 치면 메시-호날두와 같은
선수들로 11명을 채워도 좋은 팀이 되기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저희 팀이 딱 그런 예시를 보여준
것 같긴 해요. 각 팀에서 잘하는 선수들이었는데, 각자 플레이하던 방식이 있어서 의견 충돌이 있었죠.
합을 맞추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제가 지도를 잘하면,
다음 스테이지부터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이번 스테이지에서 가장 자신의 역할을 잘해준 선수는 누군가요.
모두 자기 역할을 열심히 했지만, 그래도 '텍스처' 김나라와 '엑시' 박근철 선수가 기억에 남네요.
먼저, '텍스처' 김나라 선수는 제트로 본인이 할 수 있는 플레이는 다 해줬어요.
밥값은 확실히 해줬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엑시' 선수한테는 제가 좀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팀에 오더 자리 때문에 저희가 많은 혼란을 겪고 있었어요.
다들 오더를 하기 싫어할 때, 본인이 나서서 오더를 하겠다고 자처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가 대회
3일만 남겨두고 오더를 바꿨거든요. 그래서 분명히 힘들 텐데 내색 한 번 안 했어요. 그리고 패배하면
본인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전문 오더가 아닌데 말이죠. 요원도 다른 선수들이
못하는 것들을 '엑시' 선수가 대신해주는 경우가 많아서 가장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Q. 편선호 DRX 감독과 오랫동안 FPS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는데,
지도자가 된 입장에서 서로 어떤 말을 주고받았나요.
편선호 감독이 제가 감독으로 부임한다고 하니까 "너 이제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
머리 다 빠질 거다"며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스테이지 중간에도 통화했을 때, 제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하기도 했죠. 본인도 마찬가지라며 서로 힘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DRX의 김민수 코치도 함께 서로 '파이팅'하자는 말을 자주 했던 것 같아요.
Q. 원래 카운터스트라이크 프로게이머였는데,
이제 발로란트에 전념하고 있잖아요. 종목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카운터스트라이크는 한국에서 하기가 힘든 종목이 된 것 같아요.
지금 아시아권 카운터스트라이크 씬은 거의 죽었죠.
그럴 때 발로란트라는 게임이 나왔고, 카운터 스트라이크랑 비슷하다고 해서 도전했던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건 라이엇 게임즈가 운영한다는 것이었죠. 라이엇이 발로란트를 버리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라이엇 본사에서도 저를 불러주기도 했어요. 아쉽게 코로나-19 이슈로 참석하진 못했지만,
북미 서버부터 먼저 해보면서 큰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지인들과 같이 하는데 카운터스트라이크를
잊을 만큼 정말 재미있게 했습니다. 그때 이 게임이면 다시 해볼 만 하다고 판단해서 도전하게 됐죠.
Q. 발로란트라는 e스포츠 종목의 만족도 역시 궁금합니다.
라이엇의 운영은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대회가 양적으로 적은 게 아쉬워요. 선수들에게 VCT 밖에 없잖아요.
챌린저스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해요. 만약 떨어지면 끝이잖아요. 시즌 중간마다 다른 대회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챔피언스 일정도 일찍 끝나서 선수들이 쉬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게 아쉽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편하게 해주세요.
일단 저희가 VCT 챌린저스 코리아 스테이지1에서 만족하지 못할 성적으로 끝내서 팬들에게 죄송해요.
그래서 다음 시즌에는 더 많이 발전해서 꼭 우승하겠습니다. 지켜봐 줬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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