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논란을 거듭한 끝에 FC서울-제주
유나이티드의 '하나원큐 K리그1 2022' 6라운드 경기가 열렸다.
결과는 제주의 2-1 승리, 서울은 5라운드 울산 현대전을 치른 뒤
주전 자원 대다수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에 감염됐다.
울산 선수들의 대규모 감염을 모르고 치러 당황의 연속이었다.
여파는 A대표팀까지 이어졌다. 제주전을 뛰었던 공격수 나상호가 이란,
아랍에미리트(UAE)와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조별리그
A조 9~10차전 명단에 포함되고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낙마했다.
K리그 한 경기당 경제적 가치가 1천억 원이었다면 쉽게 강행 했을까?
서울 입장에서 소득이라면 어린 선수들이 대거 경기 경험을 쌓았다는 점이지만,
승점 3점을 잃은 것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울산전에서 패했지만,
대한축구협회 심판소위에서 오심으로 정정됐다. 물론 패배라는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3연패에 5경기 무승이라는 아픔만 확인했고 안익수 감독은 공식 인터뷰에 나오지 않아
3백만 원의 제재금을 부과 받았다. 안 감독은 코로나19에도 감염, 제주전을 지휘하지 못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두고 A구단 고위 관계자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코로나19 지침에 대해서는 이해한다.
하지만, 경기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선수들의
건강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의 말을 더 옮기면 이렇다. 그는 "명단에 부상자 포함해 17명을 넣으면 된다는 것은 성적 지상주의의 끝이 아닐까 싶다.
프로축구는 영화나 콘서트처럼 돈을 주고 소비하는 문화 콘텐츠인데 B급 콘텐츠를 유료로 보여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
연기가 그렇게 어려웠나. 만약 K리그 한 경기당 경제적 가치가 1~2천억 원 정도 됐으면 무작정 경기를 강행했을까.
선수들의 건강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좋은 경기력'이 콘텐츠의 핵심인데"라며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B구단 지도자는 "코로나19에서 회복한 선수들의 상태를 보면 완벽하지 않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호흡기 질환 아닌가. 경기 체력을 찾는데 정말 힘들어하는 모습들을 봤다.
경기의 질이 떨어지면 이를 보는 팬들도 손해 아닌가.
그런데 경기 경험 없는 어린 선수들을 끼워 팔기처럼 넣어서 강행하는 것은 이해 불능이다.
그냥 한 경기 치렀다. 순연되면 손해다. 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한 경기에는 경기를 치르는 선수와 관전하는 팬,
구단 후원사, 이를 활용하는 마케팅과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사,
보도하는 언론 등 '스포츠 산업'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서울-제주전은 모든 것이 불균형이었다. 제3자가 보기에 선수들은 보호받지
못했고 구단은 당황했으며 팬들은 뻔한 결말에도 격려의 박수만 쳐줬다.
물론 일정 연기는 양팀의 공감대가 필요하다. 서울은 제주에 연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는 경기를 치르겠다며 서울에 왔다. 제주의 선택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코로나19 확진 가능성을 알면서도 경기를 치렀다. 경기 전 감독대행 역할을 맡았던 김진규 서울
코치가 제주에 사과 메시지를 던진 것이 그랬고 남기일 감독도 이를 충분히 이해했다.
제주의 승점 3점 획득도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서울전 승점 3점이 리그 말미에 파이널A,
B를 가르는 과정에 밀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건강과 승점 3점을 바꿨다고 하더라도 제주
입장에서는 가치가 있는 경기였다. 경기 막판 서울 선수단의 집중력에
실점하며 애를 먹고 2-1로 승리한 것도 제주를 깨우는 계기가 됐다.
어쨌든 돈과 건강 모두를 잃은 안 감독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난 22일 스포티비뉴스와 전화 통화에
응한 안 감독의 목소리는 탁하고 갈라져 있었다. 터미네이터' 안 감독도 호흡기 질환에는 장사가 없었다.
코로나19 폭증으로 정부가 격리 해제일을 기존 10일에서 7일로 줄여 해제 됐지만,
완전한 건강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안익수 감독 "축구가 동네잔치가 되면 안 된다"
늘 '미래 지향적',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을 좋아하는 안 감독은 울산,
제주전을 거치는 과정을 보며 씁쓸했다고 한다.
"이번 상황을 겪으면서 선수 건강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승점이 우선순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목소리를 내면 뭐 합니까. 누가 동조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메아리가 치겠지만,
한쪽이 제한적으로만 움직이니 말이죠.
선제적으로 이렇게 하자(경기를 연기하자)는 이야기를 듣지 못해 실망스럽더라고요.
이제 (어떤 문제에 대해) 제가 이야기를 해도 크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겠다는 생각만 들어요.
생각에 의미를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많이 안타깝더군요.
축구계가 이런식으로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발전할 것인지 걱정이 많아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데 그만 하자고 했습니다."
K리그는 유럽 축구나 일본 J리그의 제도 변화나 방식을 자주 참고한다.
좋은 것만 흡수하려는 모습만 보면 상당히 선진적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의사 결정 구조 일부는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도 있다.
17명 구성 중 무증상자나 부상자의 명단 포함 여부를
프로연맹에 물었을 때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던 것이 그랬다.
눈치와 흐름에 따라 답이 달라질 여지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안 감독은 축구가 사회적으로 주는 의미에 주목하며 가치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축구가 동네잔치가 되면 안 됩니다.
사회가 앞서갈 때는 활력을 주는 상징이 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축구를 통해 (사회적으로)
메시지를 줄 수도 있어야 해요. 그런데 가치를 너무 간과하고 규칙에 메여 있는 것이 안타깝더군요.
잘못된 부분이 보인다면 먼저 말을 할 용기도 있어야 해요.
과거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이 FA컵에서 재경기를 먼저 제안한 것처럼 말이죠."
안 감독이 말한 벵거 전 아스널 감독의 사례는 이렇다.
아스널은 1998-99 잉글랜드 FA컵 5라운드(16강)에서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2-1로 이겼다.
마르크 오베르마스가 결승골을 넣었다.
이 과정에서 셰필드의 한 선수가 부상으로 쓰러졌고 볼을 밖으로 걷어냈다.
하지만, 아스널 선수들은 그대로 볼을 셰필드에 내주지 않고 공격을 전개해 골을 넣었다.
규칙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공정한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축구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그러자 벵거 감독이 잉글랜드 축구협회(FA)에 재경기를 치르자고 제안했고 3자 모두 합의해 열렸다.
재경기에서도 아스널은 2-1로 당당하게 이겨 4강까지 진출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역시 재경기 혈전을 벌여 1-2로 패하며 결승 진출 티켓을 놓쳤다.
그래도 벵거 감독의 신사적인 모습에 박수가 쏟아졌다.
이미 경기는 지나갔으니 재경기는
아니더라도 선수들의 건강에 대해 K리그를 구성하는 지도자,
관계자 모두가 정리, 통일된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란 것이다.
코로나19로 신설된 제도는 한시적일 수도 있지만,
다른 유행성 질병이 나타나면 또 적용할 수도 있다.
대규모 선수단 확진자를 겪으면서 프로연맹도 큰 숙제를 안고 다음을 보게 됐다.
만약 A매치 2주 휴식기에 선수들이 다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치렀다면 건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다음에도 같은 상황이 나오기 전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
재감염의 위험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안 감독은 '컨트롤 타워'가 중심을 잘 잡고 깊이 있게 정책을 추진하기를 기대했다.
과거였다면 거침없는 말들이 나왔을 안 감독이지만, 최대한 정제하며 제언했다.
"사회에 헌법 등 법률이 있다면 그라운드 위에는 페어플레이가 있어요. 서로 존중하자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구호만 외치고 실행은 하지 않아요.
(축구에서 파생된 행위나 제도가) 사회에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없어지는 것 같아요.
작은 결정이 큰 부분을 만들 수 있는데 (정책을 집행하는 구성원들이) 이를 간과해서도 안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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