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KBO리그로 돌아온 김광현이 다시 찾은 건 한글 이름과 등번호 29번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보낸 2년간 사라졌던 '147'도 되찾았다. 시범경기 첫 등판부터 최고 150,
평균 147km/h의 강속구를 던지며 우리가 알던 그 모습 그대로 돌아온 김광현이다.
결코 지난 2시즌 빅리그에서 거둔 성적이 나빴던 건 아니다. 35경기(28선발) 10승 7패 평균자책
2.97로 평균자책만 따지면 KBO리그 통산(3.27)보다도 좋은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내용으로 들어가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김광현 특유의 시원한 강속구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KBO리그 시절보다 구속이 3~4km/h 가량 줄어든 가운데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가진 변화구를 총동원해 경기를 풀어나갔다.
"역동적인 폼에서 나오는 패스트볼과 강력한 슬라이더가
주무기"라던 빅리그 진출 당시 리포트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빅리그 진출 첫해 시범경기 때만 해도 문제가 없었다. 시범경기 등판 때는 최고 152km/h까지 던졌고,
정규시즌 데뷔전에서도 평균 147.9km/h를 던지며 활약을 예고했다. 하지만 데뷔경기 이후로는
한번도 평균 147km/h을 넘기지 못했다. 146km/h을 넘긴 경기도 없었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143~145km/h대에 머물렀다. 베이스볼서번트가 제공하는 스탯캐스트 데이터에 따르면 2020년
김광현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44.7km/h였다. 팔꿈치 수술 직전인 2016년(144.9km/h) 수준이다.
2년째인 지난해엔 구속이 더 하락했다. 평균 143.4km/h로 프로 무대에 데뷔한 이래 가장 나쁜
평균구속을 남겼다. 7월 29일(한국시간) 클리블랜드전에서는 최저 기록인 평균 141.3km/h가 나오기도 했다.
불펜투수로 등판한 마지막 4경기에서만 '반짝' 146~7km/h를 기록했다. 시즌 뒤
FA가 된 김광현을 향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는 "기교파 투수"라고 평가했다.
미국 무대에서 2년간 자취를 감췄던 '강속구 투수'는 김광현의 한국 복귀와 함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22일 인천에서 열린 시범경기 LG 트윈스 전에서 김광현은 우리가 알던 바로 그 김광현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날 김광현은 패스트볼 최고 150km/h, 평균 147km/h를 던져 미국 진출 이전(2019년 147.1km/h)의
스피드를 회복했다. 비록 2이닝이긴 하지만 8~90% 수준의 컨디션으로도 147km/h이 나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강속구 투수 김광현, 어디 갔다 이제 돌아온거야
김광현의 '147'은 2년간 어디에 숨어있다가 이제 나타난 것일까.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답은
한국과 미국의 공인구 차이다. 손에 착 감기는 KBO 공인구와 달리 메이저리그 공인구는 미끄럽고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동안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그립감 향상을 목적으로 파인 타르
등 온갖 이물질을 사용했다. 선크림, 면도크림, 콜라, 윤활유 등 별의별 레시피를 동원해 만든 이물질을
공에 발랐다. 한국 공과는 그립감이 다른 미국 공 때문에 김광현의 스피드가 줄어든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직까지 공인구 차이가 패스트볼 '구속'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는 나온 바가 없다.
대신 이물질을 사용해 공인구 그립감을 향상시키면 패스트볼 '회전수'가 몰라보게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는 있다. 실제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이물질 사용을 엄격히 규제한 뒤 회전수가 크게 줄어든
투수는 있어도 구속이 감소한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또 공인구가 문제였다면, 한국에 온 메이저리그
출신 외국인 투수 중에 눈에 띄게 구속이 빨라진 투수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 해당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김광현이 미국에서 뛴 2년간 심각한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를 겪은 것도 아니다.
부상이나 몸의 이상이 있었다면 애초에 풀타임 빅리거도 뛰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난 시즌 잠시 허리 통증을 겪긴 했지만 시즌 내내 부상을 달고 던졌던 건 아니다.
무엇보다 2020년 첫 시즌에는 별다른 부상 없이 건강했다.
이 미스터리는 김광현을 신인 때부터 지켜본 김원형 SSG 감독도 쉽게 답하지 못하는 '난제'다.
24일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난 김 감독은 "김광현이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시즌 개막이 한참 미뤄졌다. 경기수도 162경기에서 60경기 정도로 축소됐다"면서 "기존에 해왔던 것에
비해 준비가 미흡했을 수 있다. 언제 경기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수가 평상시
루틴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실제 김광현은 빅리그 데뷔전(7월 25일)을 치른 뒤 거의 3주 가까운 강제 공백을 가졌다.
당시 세인트루이스 팀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면서 취소된 경기가 많았다.
결국 데뷔전으로부터 24일 뒤인 8월 18일에서야 두번째 등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데뷔전에서 147.9km/h였던 김광현의 평균구속은 두번째 등판에서 144.8km/h로 뚝 떨어져 있었다.
트레이너 도움 없이 혼자 운동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도 어려움을 더했다. 김광현은 "미국에 있을 때
코로나19로 트레이너 도움을 많이 받지 못했다. 선수 한 명당 15분이었다"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한국에 돌아온 올해는 다르다. 비록 팀 스프링캠프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국내에 머물면서 체계적으로
시즌을 준비했다. SSG에 합류한 뒤엔 구단 트레이너들의 세심한 관리도 받을 수 있었다. 김 감독은
"김광현이 팀 훈련은 아니지만 개인 훈련을 충실히 했다. 실내 라이브피칭 때 최고 145km/h 정도
나왔었는데, 실전 경기가 되니 또 달라지더라. 22일 경기에선
나도 놀랄 정도로 좋은 구속이 첫 등판부터 나왔다"고 감탄했다.
올해 한국 나이로 35세. 어느새 '베테랑'에 속하는 나이가 됐지만 특유의 역동적인 투구폼은 그대로다.
김 감독은 "김광현의 폼은 내가 선수일 때 봤던 폼과 코치로 봤던 폼, 그리고 현재의 투구폼 셋으로 나눌
수 있다"면서 "코치일 때 봤던 폼과 지금의 폼에 큰 차이는 없다. 20대 초반일 때는 축이 되는 다리를
세우면서 높은 타점에서 공을 던졌다. 그 뒤로 폼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다이나믹한 폼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김 감독은 "나이가 30대 중반인데도 첫 등판에서 140km/h 후반대를 던졌다.
워낙 자기 몸 관리를 잘하는 선수라서 여전히 좋은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고 칭찬했다.
역동적인 투구폼에서 나오는 평균 147km/h의 강속구. 선수와 코치 시절
김원형 감독이 기억하는 김광현의 모습이자,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기교파 투수'로 빅리그에서 보낸 2년이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스피드가 봉인된 김광현은
살아남기 위해 커브, 체인지업 등 한국 무대에서는 거의 던지지 않았던 -던질 필요도 없었던- 변화구를
부지런히 갈고 닦았다. 22일 등판에서는 6회 커브로 두 차례 선 채 삼진을 잡아내기도 했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만 생각한 LG 타자들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커브에 꼼짝 못하고 얼어붙었다.
3년 전보다 훨씬 좋아진 변화구에 속구 구속까지 3년 전 수준을
유지한다면 김광현은 난공불락의 투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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