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검토와 공감대 마련하는 작업 선행되어야
한국프로야구 KBO리그가 출범 40주년을 맞이하여 최근 '포스트시즌 제도 개편'이라는 카드를 들고나오면서 화제로 떠올랐다.
정체된 프로야구 인기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줄 변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뚜렷한 명분이나 공감대없이 졸속으로 추진하는 제도 개편이 오히려 자충수가 될수있다는 비판도 만만치않다.
KBO는 최근 2022년 제 1차 이사회를 열고 팬 서비스 확대와 새로운 성장을 통한 KBO리그만의 경쟁력 강화 방향을
모색하기로 의결했다. 여기서 팬들의 관심이 높은 포스트시즌의 참가 팀 확대, 경기운영 방식 변화 등을 검토하여
이르면 2022시즌부터 적용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연장전 승부치기 도입, 후반기 2연전 체제 개편 등도 검토할 예정이다.
가장 큰 화두로 꼽히는 것은 역시 포스트시즌 개편이다.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10개 구단 단일리그제로 운영되고
있는 KBO리그의 포스트시즌은 정규리그 1위팀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이하 순위에 따라 5위까지 가을야구에 참여할 수 있다.
와일드카드(최대 2경기), 준플레이오프(3전 2선승제), 플레이오프(5전 3선승제), 한국시리즈(7전 4선승제)로 이어지는 이른바 '계단식 토너먼트 방식'이다.
정규리그 성적에 따라 순위가 낮은 팀일수록 포스트시즌에서 치러야 할 경기가 늘어나는 식으로 순위가 높은 팀에서
베네핏이 주어지는 구조다. 한국야구는 1989년부터 단일리그제가 정착되었고, 전후기리그제로 운영되었던 1980년대 초창기와
1990년대 후반 일시적으로 도입된 양대리그 시절을 제외하면, 포스트시즌 제도는 현재의 큰 틀을 꾸준히 유지해오면서 정착됐다.
KBO의 구상은 더욱 흥미진진한 가을야구를 만들기 위하여 포스트시즌 참가팀을 확대하고 토너먼트 방식에도 변화를 주겠다는
구상이다. 현행 5위까지 주어지던 가을야구 막차티켓이 6위팀까지 허용하고, 토너먼트
제도도 계단식에서 병렬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새 포스트시즌 제도의 경우, 프로야구와 같이 10개 구단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남자 프로농구(KBL)의 6강 플레이오프가
롤모델로 꼽히고 있다. 프로농구는 정규시즌 1~2위팀이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을 하고, 6강플레이오프에서는 3위와 6위,
4위와 5위팀간 승자와 맞대결을 펼쳐서 챔프전 진출팀을 가리는 방식이다. KBL는 1997년 출범 원년 이래 현행 플레이오프
제도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물론 프로농구와 반드시 똑같은 방식만이 아니라 일본식
포스트시즌제도처럼 상위팀에 +1승과 홈어드밴티지를 부여하는 방식 등의 절충안도 거론되고 있다.
포스트시즌 제도가 바뀌게 된다면 가장 큰 차이는 역시 경기 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기존 KBO리그의 포스트시즌
제도는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최소 10경기, 최대 17경기를 펼친다. 6팀이 치르는 포스트시즌
구조에서는 준플레이오프를 3전 2선승제, 플레이오프를 5전 3선승제,
한국시리즈를 7전 4선승제로 치른다고 했을 때 최소 14경기에서 최대 23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된다.
팬들의 관심과 선수들의 경기 집중력이 훨씬 높아지는 포스트시즌 경기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KBO리그의 관중동원과
방송중계권-마케팅 수익 증가에도 큰 호재가 된다. 또한 포스트시즌 참가팀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성적이
떨어지는 중하위권 팀들도 정규시즌 막바지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수 있다.
반면 가뜩이나 도마에 오르고 있는 정규리그의 가치가 더욱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도 정규리그 1위팀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 사실상 진정한 챔피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아무리 스포츠에서 단판승부의 묘미가 크다고 하지만, 144경기 체제 장기레이스에서 꾸준히 잘한 팀이,
단기전 10여 경기에서 잘해서 우승한 팀보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과연 정상적인지는 팬들의 오래된 논쟁거리다.
팀수가 많지 않은 10구단 단일리그 체제인 KBO리그에서 절반이 넘는 6팀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는 것도 리그의 질적인 측면에서 찬반여론이 엇갈린다.
6강플레이오프 제도를 운영해온 KBL의 경우,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종료된 2019-20시즌을 제외하고
총 24번의 플레이오프를 치렀는데 이 중 정규리그 1위팀의 챔프전 우승확률은 놀랍게도
12번으로 우승 확률이 불과 50%에 지나지 않았다. 1위팀이 아예 챔프전 조차 오르지 못한 경우도 2번이나 있었다.
2위가 7차례 우승으로 그 뒤를 이어었고, 3위 팀도 5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4-5-6위 팀이 챔피언결정전을 제패한
사례는 아직 없다. 다른 종목에 비교해도 농구는 정규리그 우승팀의 이점이 그리 절대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야구는 단일리그 체제(전후기리그-양대리그제 제외)에서 역대 정규리그 우승팀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한 횟수는 총 31번 중 무려 26번(83.8%)이나 됐다. 물론 농구와 야구의 종목 특성이 다른 만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포스트시즌 제도가 개편된다면 아무래도 현행 제도보다는 이변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리라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계단식 토너먼트제에서는 높은 단계를 선점한 팀이 확실히 유리하다. 꼭 1위팀만 우승을 해야한다는 게
아니라 정규시즌의 성과로 따른 당연한 '베네핏'이고, 하위팀은 그런 악조건을 딛고 역전을 이뤄내는 게 단기전
'업셋'의 진정한 묘미다. 그런데 포스트시즌 제도 변경이 현실화될 경우, 5-6위팀이라도 분위기만 타면 몇 경기만에
우승을 노릴수 있게 된다. 팀도 선수도 정규시즌에 달성한 노력과 성과에 걸맞는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면
굳이 모든 경기에 최선을 다할 이유가 없다. 이는 오히려 스포츠의 공정성을 흔드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왜 하필 이 시점에서 포스트시즌 제도를 건드려야만 하냐'는 그 당위성에서 별 공감대를 얻지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물론 리그 발전을 위하여 다양하고 자유로운 문제제기나 담론은 필요하고, 포스트시즌 역시 필요하다면 언제든 논의와 개편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축구 역시 최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월드컵을 4년 주기에서 2년 주기로
개편하자는 논의가 제기되며 치열한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변화의 목소리가 공감대를 얻으려면 그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한다. KBO리그의 포스트시즌은 그동안 딱히
개혁해야할 만한 큰 문제가 된 적이 없었고, 팬들 역시 오랜 세월을 거쳐 정착되어온 제도에 딱히
불만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오히려 야구팬들이 바랬던 건 최근 도쿄올림픽
노메달-코로나19 확진자 발생과 리그 중단 사태-프로야구 하향평준화와 팬서비스 문제 등,
한국야구의 질적 하락과 구성원들의 프로의식에 대한 개선이었다.
팬친화적인 마인드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상업적인 목적을 제외하면 별다른 실효성을 찾을수 없는 포스트시즌 개편 카드를
생뚱맞게 꺼내든 것은, 앓던 이는 내버려두고 엉뚱하게 건강한 이빨을 뽑는 격이 될수 있다. 리그의 근간을 유지할 제도를
하나 폐지하고 새로 만드는 것은, 즉흥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충분한 검토와 공감대를 마련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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