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들 사이에선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드림팀’이 누구냐를 따지는 논쟁이 종종 나온다.
4강 신화를 썼던 2002 한·일월드컵이 2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는
축구 전문가들에서도 언급되는 빈도가 부쩍 늘어난 주제이기도 하다.
한·일월드컵에서 그라운드를 누볐던 황선홍 23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54),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52)과 만난 ‘스포츠경향’이 드림팀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한국 축구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술술 풀어내던 두 사람은 이날 처음 생각할 시간을 요구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거나 지금 휩쓸고 있는 별들이 워낙 많다보니 당연한 얘기였다.
한 세기 반에 가까운 한국 축구의 발자취를 더듬던 이들은 10여분이 지난 시점에서야 하나 둘
이름을 꺼내기 시작했다. 드림팀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영광의 주인공은 역시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갈색 폭격기’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골잡이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69)이었다.
차 감독은 아시아 변방에 머물던 한국 축구에 대한 평가를 바꿔놓은 인물이다. 그는 1989년
은퇴할 때까지 11년간 분데스리가(다름슈타트·프랑크푸르트·레버쿠젠)에서 308경기를 뛰며
98골을 넣어 그때까지 외국인 선수 최다골 기록을 세웠다. 또 당시 유럽 최고를 다투던 UEFA컵에서
두 차례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차 감독의 활약 덕에 숱한 한국 선수들이 유럽 무대를 누빌 수 있었다.
김 부회장은 차 감독을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낙점한 뒤 “한국 축구에서 차 감독님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황 감독도 “같은 공격수로 언제나 존경할 수밖에 없는 분”이라며 “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감독님에게 공격수로 인정받았을 때 너무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월드컵에서 부상으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이제야 하는 이야기지만 조별리그 최종전(벨기에)을
앞두고 감독님이 경질 통보를 전해 듣는 자리에 내가 앞에 있었다.
그게 내 탓 같아 아직도 죄송한 마음”이라고 과거를 떠올렸다.
차 감독의 반대편인 왼쪽 날개에는 별 다른 고민도 없이 손흥민(30·토트넘)의 이름이 나왔다.
손흥민은 아직 현역이지만 한국을 넘어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그는 한국 축구의 유럽무대 도전과 관련해 각종 기록을 줄줄이 갈아치우고 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차 감독이 레버쿠전에서 넣은 17골을 넘어 한국인 유럽리그 한
시즌 최다골(21골)을 경신한 데 이어 아시아 선수 최초의 유럽 빅리그 득점왕도 노리고 있다.
아직 커리어에 우승컵이 없지만 그 기량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었다.
황 감독은 “솔직히 (손)흥민이가 이런 위치까지 올라올 것이라 예상한 이도 없을 것”이라면서
“기량과 기록 모두 월드클래스다. 앞으로 제2의 흥민이가 나온다면 한국 축구에 커다란 축복”이라고 말했다.
득점을 책임지는 최전방 골잡이로는 황 감독이 뽑혔다. 유럽무대 경력을 따진다면 두 사람과
비교하기 어렵지만, 대표팀에선 오히려 정반대다. 한·일월드컵 폴란드와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4강 신화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황 감독은 자신을 드림팀에 뽑은 것에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차 감독님과 흥민이가 양쪽에서 도와준다면 고민도 없겠다. 그냥 난 골만 넣으면 된다.
한 해에 A매치 30골도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사실 원톱 포지션을
생각하면 경쟁자는 최순호 선배(포항 스틸러스 기술이사) 정도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중원을 누비는 미드필더를 뽑는 순서에선 가벼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지성 전북 현대 테크니컬
디렉터(41)와 조광래 대구FC 사장(68)은 문제가 아니었다. 영원한 ‘캡틴’ 박지성은 차범근 손흥민과
함께 한국 최고의 선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고, 조 사장 역시 현역 시절 ‘컴퓨터 링커’라는
애칭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문제는 남은 한 자리였다. 황 감독은 “지성이는
섀도우 스트라이커이자 측면 미드필더로 모두 최고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조 사장님도 중원의 연결고리로
아직 따를 자가 없다”면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무게감이 비슷한 인물이 확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일월드컵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남일 성남FC 감독과 고 유상철 인천 유나이티드 명예 감독 등이 언급됐으나
미드필더 마지막 주인공은 기성용(33·서울)이 꼽혔다. 한국에서 드문 장신(189㎝) 미드필더로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셀틱)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스완지시티·선덜랜드·뉴캐슬 유나이티드)를 누빈 기성용이 클럽과
대표팀에서 전반적으로 드림팀에 어울리는 활약을 펼쳤다는 게 두 사람의 설명이었다. 실제로 기성용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힘을 보탰을 뿐만 아니라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메달을 따내면서 황금
세대의 선두 주자로 불렸다. 김 부회장은 “솔직히 내 머릿속에 이 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싶은 선·후배가 너무 많다.
그래도 (기)성용이 정도면 다른 분들이 수긍할 것”이라고 말했다.
드림팀의 수비 라인을 짜는 작업은 오히려 수월했다.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53)과 김민재(26·페네르바체)가
센터백 콤비를 이루고,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45)와 박경훈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61)가 좌우
풀백으로 나서는 포백이 순식간에 짜여졌다. 한·일월드컵 당시 주장으로 4강 진출을 이끈 홍 감독은 그
활약상을 인정받아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한 월드컵 브론즈볼을 받은 인물이다.
또 다른 4강 신화의 멤버인 이 대표도 수비수로는 한국 최초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토트넘)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1986 멕시코월드컵 멤버인 박 전무는 뛰어난 기량과 함께 측면 수비수로는 최초로 오버래핑
플레이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드림팀에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비수에선 유일한 현역인 김민재는 아직
월드컵 출전 경험이 없는 게 흠이지만 유럽 리그 진출로 선배들을 뛰어넘는 영광을 안았다. 김 부회장은 “원래는
(한·일월드컵 당시의) 3-5-2 포메이션을 생각했는데, (김)민재가 보여주고 있는
활약상을 생각하면 포백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칭찬했다.
드림팀의 골문을 지키는 수문장으로는 김 부회장이 선정됐다. 1998 프랑스월드컵 당시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씻어내던 그의 선방쇼와 더불어 K리그에서 영원히 남을 것으로 보이는 출전 기록(706경기)을
세운 것이 영향을 미쳤다. 황 감독은 “골키퍼로 (김)병지의 실력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라면서 “몸만 보면
여전히 현역이다. 그러니 그런 K리그 기록을 세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지금 생각해보면
20살에 데뷔해 40살까지 매년 35경기 이상을 뛰어야 내 기록을 깰 수 있다.
오랜 세월 골문을 지킨 보람을 오늘 느끼는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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