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계에 또 하나의 안타까운 비보가 전해졌다. 남자 배구선수 김인혁(삼성화재)이
지난 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으로 알려지며 팬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김인혁은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SNS 프로필에 "1995.7~2022.2"이라는 글을 남겼고,
아픔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의미심장한 가요 가사를 업로드한 것 등에 미루어 볼 때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배구계는 2011년 이용택(삼성화재), 2020년
고유민(현대건설)에 이어 또다시 배구계에서 젊은 인재를 잃는 비극이 발생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김인혁은 진주동명고-경남과기대를 거쳐 2017-2018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3순위로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에 지명되어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2019~2020시즌에 32경기,
120세트에 출전하여 공격성공률 49.20%로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잠재력이
만개하는듯 했으나 2020-2021시즌 삼성화재로 트레이드되면서 주전 경쟁에서 밀려 백업에 그쳤다.
올 시즌에는 불과 2경기 2세트 출전하여 득점 없이 범실 2개만을 기록하며 사실상 전력외로 밀렸다.
김인혁은 V리그 통산 83경기에 출전하여 575득점, 공격성공률 48.51%를 기록했다.
김인혁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또다른 이유는, 그가 자신의
SNS에 쓴 누리꾼들의 과도한 악성 댓글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김인혁은 지난해 8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부 네티즌이 작성한 악성 댓글을 공개하며 "10년 넘게 들었던 오해들,
무시가 답이라 생각했는데 저도 지친다"며 "저를 옆에서 본 것도 아니고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를 괴롭혀온 악플은 이제 그만해달라. 버티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로 인하여 김인혁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도 악플 때문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김인혁은 생전에 아이돌같은 외모로 데뷔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고 본인도 세련된 패션과
스타일링을 즐기는 모습을 SNS에서 드러내며 팬들과 소통해왔다.
오늘날에는 운동선수라도 경기장 밖에서의 사생활은 되도록 간섭하지 않고 존중받는 분위기다.
하지만 김인혁은 SNS에 올린 경기중 모습이나 일상 사진에서조차 화장설, 성형설,
성소수자설 등 유독 외모 비하와 성희롱성 댓글에 자주 시달려야했다. 이에 김인혁은 "화장 한
번도 한 적 없고, 남자 안 좋아하고, 성인 배우도 안 했다. 마스카라 안 했고 눈 화장도 안 했고 스킨,
로션만 발랐다"며 누리꾼의 근거없는 의혹제기에 일일이 반박하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1년 7개월 전 고유민의 사망을 계기로 전 사회적으로 악플 근절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네이트 등 국내 유명 포털 기업들은 악플의 온상으로 꼽히던
스포츠/연예 뉴스 댓글 기능을 전격 폐지한다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악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악플러들은 이제 SNS와 유튜브, 커뮤니티 등을
새로운 타깃으로 삼았다. 스포츠스타나 연예인, 셀럽들이 직접 운영하는 SNS 계정에 직접 다이렉트
메시지(DM)로 악플을 보내거나, 유튜브 등을 통해 특정인을 비방하거나 음해하는 컨텐츠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악플을 배출하는 창구가 바뀌었을뿐, 익명성을 악용하여 도를 넘는 자극적인
악플의 숫자와 수위는 더 올라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여기서 악플만이 모든 문제의 본질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자칫 섣부른 접근이 될 수도 있다.
고유민 역시 사망 당시에는 악플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으나, 이후 유족들의 법적 고발로 전
소속구단과의 갈등 등 또다른 복잡한 문제들이 있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인혁 역시 생전에 악플로
인하여 적지않은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그로 인하여
극단적 선택까지 한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현대의 프로 선수들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환경에 놓여 있음을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 과거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에서는 운동 그 자체에 목숨을 거는
'성적지상주의'와 '헝그리 정신'을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나약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스포츠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과 내용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시대다.
미디어의 발달로 선수들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경기장 안팎에서 실시간으로
대중에게 공개되고 매순간 평가받는 것을 감수해야하는 예민한 환경에 처해있다.
또한 오늘날의 스포츠에서 멘탈(정신)은 피지컬(신체조건)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과거에는 운동에 집중하는 순간의 멘탈에만 주목했지만, 이제는 훈련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때,
혹은 경기장밖에서의 사생활이나 자기관리에서도 프로다운 멘탈을 요구하는 시대다. 매순간
언론과 팬들의 평가를 받는 선수들은 한 순간의 실수나 시행착오로 순식간에 이미지가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기 일쑤다. 아무리 프로 운동선수라고 해도 경기장 밖에서는 우리네 일반인과
다를바 없이 실수도 하고 좌절도 겪는 20-30대의 젊은 청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 극단적 선택을 했던 이들의 공통점을 돌아보면 꽤 오래전부터 심리적으로 점점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2011년 당시 이용택은 신협상무 복무
시절 두 차례 어깨 수술을 받으며 제대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제대 이후
친정팀에 복귀하더라도 제대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고민을 여러 차례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유민은 몇 년전부터 불면증과 우울증 증세를 호소한 사실이 알려졌고 유족들은 그 원인으로,
구단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사실상 강제 은퇴로 내몰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인혁은 지난해 삼성화재에서 주전경쟁에 밀리며 지난해 12월부터는 부상을 이유로 아예
선수단에서 나와 자택에서 휴식중인 상태였으며 SNS에 은퇴를 암시하는 듯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여러 가지 복합적 이유가 있겠지만 선수들이 꽤 오래전부터 심각한
'마음의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차라리 육체적인 부상은 겉으로 드러나기에 치료라도 받을 수 있지만, 마음의 부상은 주변이나 당사자도
깨닫지 못한 채 악화되기 쉽다. 오늘날 프로구단들도 정신의학 전문의나 스포츠 심리치료사를 팀 내에
배치하며 선수들의 멘탈 관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더구나 폐쇄적인 조직 구조 안에서 선수의 활용가치에 따라 경쟁-생존-방출 등의 순환이 불가피한
체육계 시스템상, 성인 선수들의 다양한 개인사-속사정까지 일일이
파악하고 케어해주기란 어려운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선수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평생 운동만 해왔던 이들이 어느샌가 자신의 분야에서 더
이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더구나 대중으로부터
잘못된 오해나 혹독한 비난까지 당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면? 언제든 심리적으로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하는 스포츠스타나 연예인들에게는 이마저도 감당해야할 유명세의 일부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이 받아야했던 부담감과 고통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우리 사회와 체육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마음의 부상을 겪으며 고통받고
있을 선수들의 절절한 시그널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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