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52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카메룬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컵 오브 네이션스
축구대회(Afcon)가 일부 국가들의 정치적 혼란과 전쟁을 중단시키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고통을 잊게 해준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지난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카메룬 주민 루스는 집에서 남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볼륨을 낮춘 채 카메룬이 득점하는 장면을 관람했다.
그녀는 아프리카 축구 경기를 보다가 들키면 납치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위협을 받았다.
결국 매번 숨죽이고 경기를 관람하는 것에 진력이 난 그녀는 지난 3일 몰래 경기가 열리는
야운데로 와 직접 축구장을 찾았다. 그녀가 사는 고장은 분리주의 반군이
지배하는 곳으로 주민들이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무사히 야운데에 도착한 루스는 "맘껏 소리치고 싶어서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 동안 작은 나라들이 대회를 지배했다. 코모로스와 감비아 같은 작은 나라들이
가나와 튀니지 등 큰 나라들에게 이겼고 적도 기니 소속 골키퍼 헤수스는
말리와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두번이나 막아내면서 국민적 영웅이 됐다.
뒤이어 강국들이 등장했다. 4강에 오른 나라들은 이집트, 카메룬, 세네갈, 부르키나파소다.
4강에 오르지 못한 나라들의 축구 팬들도 이들 국가 중 하나를 응원하면서
형제애와 국경을 넘는 우정을 강조하고 있다.
아프리카 전대륙에서 축구 경기가 열릴 때마다 술집과 공항, 마을 공터와 길거리마다
관중들이 맥주병을 들거나 진하고 달달한 차가 담긴 잔을 든 채 플라스틱
의자와 나무 벤치에 앉아 90분 동안 꼼짝 않고 경기를 관람한다.
부르키나파소에서 지난주 쿠데타가 일어난 다음날 이 나라 팀이 승리하자 군인들이 신나서 춤을 췄다.
3일 밤 세네갈이 부르키나파소를 준결승에서 이기자 세네갈 수도 다카르의 길거리는 경적을 울리고
국기를 휘젓는 자동차로 가득찼다. 모든 경기가 끝날 때마다 온라인에서
수천명이 트위터에서 경기 결과를 분석하곤 했다.
잠깐 동안이지만 지독하게 분열됐던 나라에서 사람과 사람간,
집단과 집단간, 지역과 지역간 유대감이 느껴졌다.
2016년부터 격렬한 내전이 지속돼 온 카메룬에서조차 축구로 사람들이 뭉쳤다.
카메룬의 내전은 서부 지역 영어 사용권 교사와 법률가들이 법정과 교실에서 불어
사용에 항의하는 파업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불어를 사용하는 독재 정부가 강력한 진압에
나섰고 군의 인권 침해로 이어지면서 암바조니아라는 영어사용권 나라를 설립하겠다고
선언한 반군 세력의 암바 소년 전사들과 정부군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졌다.
분리주의 반군들은 축구 경기 관람을 금지했다. 카메룬이 주최하는 경기를 지지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루스와 같은 영어 사용 주민들은 지시를 무시하고 불어사용권 지역으로 여행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루스는 "통합된 나라는 아니지만 한가지 만큼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고 생각한다"면서 다른 사람들을 납치,
고문하겠다고 위협하는 암바 전사들도 부대 안에서 축구 경기를 본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Afcon은 특별하다. 외국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이 유럽 유명 축구팀
백만장자 선수들과 함께 뛴다. 유럽 시즌이 한창 진행중인 때지만 유명선수들도 대부분 참가한다.
리버풀팀 소속으로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이집트의
스타 플레이어 모하메드 살라는 지난주 아이보리코스트와 비긴 뒤 기자회견에서 "이
대회 우승컵이 가장 내 심장을 울린다"고 말했다.
부르키나파소도 위기 속에서 축구로 결속을 다지는 나라다. 이 나라 선수들과 팬들이
준준결승에 진출하기 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부르키나파소팀은 고국의 가족들의
안전을 걱정하면서도 승리했다. 그러자 3일 오후 부르키나파소 곳곳에서
출발한 응원단 버스들이 야운데에 속속 도착했다. 준결승에서 세네갈과 경기하는 날이었다.
리버풀팀에서 활약하는 사디오 마네 선수의 모국인 세네갈에서도 축구가 세네갈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건설노동자, 점원, 노점상으로 일하는 7명의 청년으로 구성된 세네갈팀 응원단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가슴에 페인트로 S-E-N-E-G-A-L을 한글자씩 써서 일렬로 선 채 응원한다.
이들은 응원 보수를 거의 받지 않지만 국가가 부를 때마다 기꺼이 생업을 내팽개치고 바디페인팅에 나선다.
이들은 서로를 돕는다. 앞 E자를 쓰는 청년은 세네갈이 케이프베르데를 이긴 날이 아들 생일이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고향 다카르에서 세네갈이 부르키나파소에게 승리한 날 열린 세례식
비용을 건넸다. 몇 년 전에는 부인이 숨진 사람이 다른 사람들 몰래 눈물을 훔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모두 나서서 새 여자친구를 소개하느라 북새통을 벌였다.
빨강, 노랑, 녹색의 모자와 바지를 맞춰입은 7글자 응원단이 월로프어로
"세네갈 승리"라는 뜻의 "세네갈 렉"이라는 구호를 선창하고 관중들이 따라했다.
2004년부터 N자를 담당해온 바바카르 실라는 "2대 0"이라고 소리쳤다.
희망 스코어였지만 모두가 그러길 바랬다.
딸 수카이나와 함게 경기를 관람한 카메룬 거주 부르키나파소 국민 아미나토우 눅타라는 "우리가
이기면 직접 우승컵을 부르키나파소로 가져가겠다"고 소리쳤다. "우승컵이 있으면 테러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경기는
세네갈이 3대 1로 이겨 6일 열리는 결승전에서 이집트와 맞붙게 됐다.
야운데 도심 교차로에 있는 술집 체즈 톤톤 안드레에서 맥주를 마시던 영어권 북서부 지역 의회
의원이 제중 아운티가 동료 두 사람과 환담을 하고 있었다. 이들도 카메룬 경기를 보려고 야운데까지
오기 위해 큰 위험을 감수했다. 자신들이 모시던 지역의회 부의장이 지난 12월에 납치됐었다.
"그렇지만 축구는 모든 것을 이긴다"고 그가 말했다.
루스는 카메룬-이집트 경기 표를 간신히 구했다. 경기는 이번 대회에 맞춰 새로 지은 알록달록한
올렙베 스타디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지난달 24일 이곳에 사람이 몰리면서 압사사고가 발생해
8명이 숨지는 일도 있었다. 루스는 교통체증 때문에 경기 시작 전에 경기장에 도착하지
못하자 인근의 술집에 들어가 경기를 관람했다. 카메룬이 승부차기 끝에 3대 1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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