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중계 토쟁이TV - 야구기계 우승제조기 거부한 고교 감독 육성 전문가'로 SSG 퓨처스 개혁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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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중계 토쟁이TV - 야구기계 우승제조기 거부한 고교 감독 육성 전문가'로 SSG 퓨처스 개혁 이끈다

토쟁이티비 0 1,491 2022.01.22 19:06

선수들을 야구기계로 만들려 하지 않았고, 감독으로서 우승제조기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성과와 업적을 쫓기보다 많은 제자를 프로와 대학에 보내는 데서 지도자가 된 보람을 찾았다. 

선수 육성 전문가로 능력을 인정받아 이제는 고교가 아닌 프로로 무대를 옮겼다. 

아직은 '감독님'이란 호칭이 더 익숙한 김성용 SSG 랜더스 R&D 센터장 이야기다.


김 센터장은 지난해 11월 야탑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직을 내려놓고 SSG에 합류했다. 

1997년 창단 첫해부터 감독을 맡아 25년간 온갖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 팀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매일 용인 집과 분당 학교를 오가다 이제는 강화도와 인천 문학경기장을 왕복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반복해 익숙해진 루틴을 안 하게 되니, 처음엔 어색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일을 맡아 시작하는 데서 기대감과 흥분도 느낀다."

21일 분당 모 카페에서 스포츠춘추와 만난 김 센터장의 말이다.


SSG가 올해 신설한 'R&D 센터'는 퓨처스 육성시스템 개혁의 핵심 부서다. 

그간 1군 주전 선수들의 고령화와 유망주들의 성장 정체로 고민이 깊었던 SSG는 올겨울 '선수 중심의 사고, 

선수 주도 성장, 선수별 맞춤형 육성 전략'을 중심에 놓고 퓨처스 개혁에 나섰다. 

이를 위해 시설 투자부터 미국 마이너리그식 육성 시스템, 스포츠과학 도입까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오랜 지도자 경험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바이오메카닉 등 스포츠과학을 현장에서 실행하고, 

과학적인 육성 전반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김 센터장은 "민경삼 대표이사님의 제안을 받았다. 

평소 야탑고가 SSG 연고지 학교라 왕래가 많았는데, 그동안 말씀드린 내 생각들을 긍정적으로 봐주신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야구계는 우승 횟수가 많은 감독에게 '명장'이란 칭호를 선사한다. 

가는 팀마다 정상에 이끈다고 해서 '우승제조기'라 불리는 감독도 많다. 

성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도자가 단지 우승 횟수가 많다는 이유로 명감독 소릴 듣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야탑고 감독 시절의 김성용 센터장은 일반적인 의미의 '명장'과는 거리가 먼 지도자였는지 모른다. 

총 25년의 감독 경력에서 메이저 전국대회 우승은 딱 한 번밖에 없었다. 

2017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이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었다. 

우승보다는 준우승, 4강, 8강이 더 익숙했다.


김 센터장은 "가치관의 차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우승을 위해 선수들을 들들 볶고, 

밤늦게까지 운동만 시키고, 야구 기계처럼 만들었다면 야탑고도 몇 번은 더 우승했을지 모른다"면서"나 역시 사람인데 당연히 욕심이 나고, 

지기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내 욕심보다는 선수들을 먼저 생각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센터장은 야탑고 시절 지옥훈련 대신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으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우승 욕심에 조급해하거나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저학년 선수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줬고, 

에이스 투수만 혹사하는 대신 다양한 투수를 활용했다. 

투구수 제한 제도가 생기기 전에도 전날 많은 공을 던진 투수는 아무리 다음날 중요한 경기가 있어도 마운드에 세우지 않았다.


"경기에서 진 다음에는 절대 승패를 갖고 선수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부족했던 점이 뭔지 리뷰하고, 다음 경기 때는 이 부분을 잘 보완해서 다시 해보자고 격려했다. 

이런 과정이 쌓이면서 점차 선수들과 신뢰가 쌓였다. 

내 철학을 이해하고 기다려주신 야탑고와 김인성 이사장님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김 센터장의 말이다.


2017년 봉황대기 우승은 야탑고만의 야구 철학을 끝까지 지키면서 이뤄낸 우승이라 더 큰 의미가 있다. 

당시 야탑고는 8강전에서 많은 공을 던진 에이스 신민혁을 준결승에 기용하지 않았다. 투구 수 관리도 철저했다. 

대회 기간 야탑고 마운드에서 한 경기 100구 이상 던진 투수는 아무도 없었다. 철저한 관리 속에 결승에 오른 야탑고는, 

에이스 혼자 '5일 동안 437구'를 던진 충암고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선수 혹사 없이도 우승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야탑고를 통해 증명됐다.


김 센터장은 "하늘의 뜻인지 봉황대기 때는 모든 게 잘 맞아떨어졌다. 

평소대로 투수로 골고루 쓰고 로테이션으로 기용했는데, 모든 선수가 정말 잘해줘서 우승할 수 있었다.

당시 우승 주역인 신민혁, 이승관도 프로에 가서 잘하고 있어 뿌듯한 기분"이라며 미소를 보였다.


비록 우승은 한 번밖에 못 했지만, 대신 매년 많은 선수를 프로와 대학에 보냈다. 

김 센터장은 "야탑고 하면 우승은 못해도 꾸준히 전국 중상위권에 들면서 프로에 많이 가고, 

진학을 잘 시키는 학교라는 인식이 생겼다. 경기도 지역은 물론 서울쪽 선수와 학부모들도 선호하는 학교가 됐다"고 했다.

한 학교에서 한 명도 나오기 힘든 메이저리거를 두 명(김하성, 박효준)이나 배출한 것도 야탑고의 자랑이다.


이처럼 차별화된 길을 걸어온 김 센터장이지만 처음 지휘봉을 잡았을 때는 다른 감독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도자였다. 

김 센터장은 "처음 감독이 됐을 때는 과거 내가 배웠던 야구, 내가 했던 야구대로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의 실력이 늘지도 않고, 금방 한계점에 부딪혔다. 

선수들에게 짜증도 많이 냈고, 무조건 많은 훈련과 러닝만 강조했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야구하는 게 맞나' 회의감이 들던 차에,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에서 시행하는 

'경기 지도자 1급(현 1급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을 취득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김 센터장은 "교육과정을 밟으며 스포츠 생리학과 역학, 멘탈 등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공부하다 보니 '내가 그동안 선수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배운 것들을 바로 학교에서 선수 훈련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도자로서 한계를 느끼는 시점이었고 돌파구가 필요했는데, 나를 새롭게 만든 경험이었다. 

좀 더 깊게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돌아봤다. 

김 센터장은 선수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대학원 수업을 들었고, 

단국대학교에서 '고교 포수의 송구 동작 분석'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감독 생활 초반에 함께했던 선수들에게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도 최근에 가르친 선수들에게는 내가 배운 정보와 지식을 많이 줬기 때문에 후회가 없지만, 

초기에 함께한 선수들에겐 그러지 못했다. 감독인 내가 좋은 정보도 주고 잘 케어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나도 경험이 부족했고 아는 게 없었다. 

내가 잘했다면 그 중에 더 잘 되는 선수가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김 센터장이 아쉬움을 가득 담아 이야기했다.


야탑고만의 특별한 야구 색깔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선수가 NC 다이노스 안인산이다. 

고교 시절 투수와 타자를 오가며 '천재' 소리를 들었던 안인산은 단순히 야구만 잘하는 선수가 아닌, 

야구를 학문처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인성 면에서도 모든 야구 관계자와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듣는다.


김 센터장은 "안인산 같은 선수는 정말 흔치 않다. 

처음 야탑고에 올 때부터 몸과 마음이 모두 잘 준비된 선수였다. 

어린 나이인데도 자기 몸의 움직임, 힘을 쓰는 원리를 공부하면서 야구했던 게 생각난다. 

안인산 같은 선수가 앞으로 점점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 전했다.


김성용 센터장에게 25년 감독 생활을 하며 가장 기쁜 순간이 언제였는지 물었다. 

'2017년 봉황대기 우승'이란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한참 생각한 끝에 나온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김 센터장은 "우승도 물론 기뻤던 일 중의 하나긴 하지만, 막상 우승하고 났을 때는 생각보다 덤덤했다"면서"

그보다는 매년 선수들이 프로에 가고 대학에 진학했을 때가 더 기뻤고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야탑고에선 매년 졸업생 환송회와 신입생 환영회를 함께 한다. 그때 졸업생들이 나와서 '프로구단 어디로 간다'

 '어느 대학으로 간다'고 하나하나 소개할 때가 가장 기쁘고 뿌듯했다." 김 센터장의 말이다.


무엇보다 김 센터장은 선수들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함께하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 선수와 대화를 나누고 피드백을 하다 보면, 

한참 헤매던 선수가 뭔가 찾아내고 발견했을 때 순간적으로 나오는 표정이 있다. 

그 좋아하는 표정을 볼 때마다 나도 기쁘고 행복을 느꼈다"고 말했다.


'우승 감독'이나 '명장'보다 선수들의 성장에서 지도자 된 보람을 찾았던 김 센터장은 

SSG에서도 동일한 철학으로 선수 육성에 힘을 쏟을 생각이다. 자신이 공부한 스포츠 

과학을 다른 지도자들과 공유하고,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게 김 센터장의 역할이다. 

다양한 파트를 총괄하는 역할이라 종일 사람과 만나고 대화하는 게 일이다. 

이동 시간을 아끼려고 아예 강화도 퓨처스 숙소에서 먹고 자며 업무를 보고 있다.


김 센터장은 "프로야구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론도 중요하고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퓨처스팀에 새로 합류한 외국인 지도자는 물론 국내 지도자, 프런트, 

선수들과 잘 소통하고 힘을 합쳐 SSG가 좋은 선수를 육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고교 감독일 때는 선수들이 프로에 가고 대학에 가는 데서 행복을 찾았다. 

이제는 SSG의 젊은 선수들이 1군에 많이 올라가고,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

" 우승 제조기보다 '육성 전문가'이길 원했던 지도자, 김 센터장이 환한 미소와 함께 이야기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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