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관(36)은 은퇴 기자회견이 끝나고도 오랜 시간 잠실야구장을 떠나지 못했다. 지난 19일 잠실구장에서
진행된 인터뷰 관련 행사를 마치자마자 긴 세월을 함께 한 두산 구단 관계자들과 그라운드로 나왔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1루 더그아웃 앞 그라운드로 모였다. 기념사진도 한장씩 찍은 뒤로는
김태룡 두산 단장, 김승호 운영 부장 등 두산 베어스의 주요인사들과 옛 추억을 더듬었다.
그 중 김태룡 단장이 꺼낸 추억 한 토막이 선수로 적잖이 파란만장 했던 유희관의 여정을 설명하는듯 했다.
“어쩌면 그때가 마지막일 수도 있었지…”라는 게 김태룡 단장의 화두였다.
2010년 시즌 뒤 얘기였다. 대졸 2년생이던 유희관은 2년간 1군 무대에 21차례 등판해 16.2이닝을 던졌지만, 가능성을 보이지 못했다.
주로 느슨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 승패가 없는 가운데 2년 누적 평균자책도 5.40으로 내세울 게 없었다.
이런 경우의 선수라면 대부분 군입대 코스를 밟게 된다. 복귀 뒤 희망이 있는 선수가
아니라면 구단 입장에서는 이를 하나의 결별 수순으로 삼기도 한다.
유희관으로서는 선수로서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무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유희관에게 비상구는 없었다.
김태룡 단장도 유희관에게 현역 입대를 권유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다. 희관아, 현역으로 가야겠다”
유희관도 많은 것을 내려놓고 군입대를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그때였다. 유희관의 인생 항로를 다시 바꿔놓는 소식이 전해졌다.
상무에 들어갈 수 있는 ‘추가 합격’ 통보가 날아왔다. 상무행이 예정됐던 한 선수의 이탈로 빈 자리가 난 것이었다.
김태룡 단장이 그때 다시 만난 유희관이 몸이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자포자기하듯 몸관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김태룡 단장은 기사회생한 유희관과 단단히 약속 하나를 했다. “상무에서 운동 열심히 하면서 살도 빼고 몸도 만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여기서 다시 뛸 수 있다”는 단서도 잊지 않았다.
희망은 생각을 바꾸고, 몸도 바꿨다. 유희관은 상무 입단 첫해인 2011년 2군 리그에서 5승2패 평균자책 3.25를 기록했지만 2012년에는
11승3패 평균자책 2.40의 2군 슈퍼 에이스로 거듭나며 2차례나 완봉승을 거뒀다.
두산으로 돌아온 2013년 5월4일 잠실 LG전에서 ‘땜질 선발’로 호출돼 1군 데뷔 첫승을 거둘 수 있던 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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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돌아보면 인생의 ‘나비효과’를 만든 일이 한두 개씩은 꼭 있다. 유희관에게 2010년 겨울의 일은 ‘나비효과’, 그 이상이었다. 그는 프로 101승 투수로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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